대한민국은 지금 6.25 같은 내전 중
대한민국은 지금 6.25 같은 내전 중
  • 강량 주필, 정치학박사
  • 승인 2020.1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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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이지만 너무도 조용한 전쟁, 그래서 더 무섭다

아무리 과거 한이 남았더라도 전라도사람들 왜 이러나?

요즘 대한민국을 역사 속에서 지우려는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사를 반복적으로 듣고 있자니,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인생살이에 분명한 정답이 없듯이, 인간사 만사도 때로는 권력의 논리로, 때로는 대중의 논리로, 그때그때 서로 다른 정답을 만들어 나간다는 주장에 무작정 대항할 의사는 없다.

그러나 시대의 조류에 합치되는 사회적 합의로서의 정답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몇 가지 기준점들이 있다.

이 기준점들을 무시하거나 넘어설 때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지부조화로 인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곧바로 결과에 저항하게 된다.

그 기준점으로 가장 잘 대변되는 것이 바로 ‘정의’다. 그리고 이런 정의를 정의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단어가 바로 文정권 위정자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공정’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존 롤스 (John Rowls)는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로 불려 질 수 있는 3가지 조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첫째, 정의는 인간의 이성적 상식 (Reasonable)에 맞아야 하고, 둘째,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에 합당 (Rationable)해야 하며, 셋째로, 정의의 실현과정이 공정 (Fairness)해야 한다는 사실들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세 가지 기준점이 올바르게 적용될 경우, 인간은 설사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자신의 주장과 배치될 경우에도, 나타난바 정의를 불편함 없이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들을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일방적인 자기 자신만의 독단적인 정의를 주장하거나 강요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추미애 지지자들, 이성적 합리성 완전 배제

현재 추미애 법무장관의 말도 안되는 일방적인 논리에 분노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장관의 논리를 지지하는 ‘진영의 논리’에 빠진 자들도 상당수다.

추장관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일단 이성적 합리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이는 숲은 보지 않고 각각의 나무와 그 특성만 줄기차게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서, 거듭 반복 학습시키는 일종의 ‘언어교란’ 전략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들에게 인지부조화를 야기시키는 이런 행위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단련된 훈련을 받지 않고는 진행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양심을 보유하고 있고, 그 양심의 기준이 자연법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완전히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는 스스로 양심의 자정과정을 거쳐서 절제되어지기 때문이다.

추장관을 옹호하는 ‘민변’ 출신의 변호사들은 대부분 ‘조국수호연대’와 연관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또 이들은 과거 학생운동시절 이념논쟁을 그룹별로 나누어서, 선전, 선동전술에 활용하는 ‘교리학습활동’을 해왔다.

이들은 때로는 이슈로 이슈를 덮어버리는 연습, 작은 꼬투리로 대세를 무마시키는 연습, 거짓내용을 합리화시켜 반복적으로 학습시키는 연습 등을 통해, 그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억지논리를 구상하는 전략, 전술을 다 익혔다.

결국 이런 비합리적인 논리를 깨는 방법은 이를 듣는 청중 대다수의 지적 능력이 논리의 합당성과 합리성을 가름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이런 자들의 억지논리의 부당함을 ‘큰 소리’로 꾸짖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 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의 대한민국사회와 국민들은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데, 물과 공기의 존재와도 같은, 체제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쪽에서 억지를 부리고 엉뚱한 소리를 하면, 아마도 생각이 달라서, 아니면 사고의 페러다임이 달라서 그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대구를 방문해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체제전복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태도는 너무 허술

문정권은 ‘적과 동지’로 진영을 나누고, 결국 시민사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체제를 전복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영구화하려 하고 있다.

또 이들은 전환된 체제에서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체제에 대한 ‘주권’을 강요하려고 작정했다. 이런 늑대의 무리들에게,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한 국민들의 인식과 태도는 너무도 허술하고 나약해 보인다.

물론 공산주의가 휩쓸었던 유라시아 대륙 맨 끝 쪽에 위치한 한 동양의 소국에서 수백 년에 걸쳐서 서양 계몽주의철학자들이 연구해 왔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그것도 어렵사리 수입해 온 사상을 제대로 활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실, 문명과 비문명을 개인이 국가의 주체가 되는 근대국가를 기준으로 삼고, 왕과 신민이 일치되는 전근대국가를 야만으로 규정한다면, 조선5백년의 전제군주정치에서, 36년간의 일본식민지를 경험했던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에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국시로 받아들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체화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조선일보 만평 갈무리
조선일보 만평 갈무리

그래서 자유, 민주, 인권 등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어 자체를 대한민국 국민들은 보통명사화해서 일종의 ‘선과 악’의 구호적인 개념형태로 접근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명사로서의 ‘자유와 민주’만큼이나, 개인의 가치를 내려놓고, 집단적 사고를 통한 사회주의적 속성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런 정향과 함께, 원한으로 찌들어 있는 전라도지역의 반대한민국적 특수성이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어 갔다.

그 결과가 작금의 문재인정권의 탄생과 함께, 이를 옹호하는 완전히 딴 세상 사람들과도 같은, 진영이념의 도그마에 빠진 주사파위정자들의 등장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어놓는 얼토당토 않는 궤변들을 매일 매일 경험해야하는 기막힌 작금의 현실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마술피리

지켜내어야 할 체제이념에 대한 안일함과 물질주의에 빠진 획일적 평등사회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공덕심’을 가진 한명의 문명인 또는 한명의 시민이 만들어지기란 참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평등사회에서 인간 본성에 집착하는 군중 또는 대중이란 존재는 언제든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심보다는 평등한 사회에 맹목적으로 집중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가 희생되더라도 평등하지 않는 꼴은 결코 보지 못하겠다는 ‘이기적 옹심’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남들과 비교해서 쉽게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시기, 질투, 증오, 욕망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인간의 속성들을 떨쳐버리기가 너무도 힘들다.

자신의 자유가 구속되더라도, 남이 잘 되는 것은 배가 아파서 막아야 한다. 그 결과 억압과 폭정이 난무하더라도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고 하면, 그냥 개인의 가치와 자존감을 포기하고, 무조건 포퓰리즘이라고 불리어지는 마술피리 소리를 따라가는 한심한 ‘우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연합뉴스 캡쳐
연합뉴스 캡쳐

드디어 이명박 전대통령이 대법원에서 17년형을 최종선고 받고, 11월 2일부로 구치소에 재수감된다. 고령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이명박 전대통령은 감옥에서 ‘옥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수감되어 있는 또 다른 박근혜 전대통령도 37년형을 받았으니, 현재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그녀 또한 옥사할 가능성이 크다. 정말 해외토픽 감이다. 국제사회로부터 조롱받을 만한 ‘코미디’ 같은 국내적 정치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정권 당시 한겨레신문은 ‘베네주엘라의 위대함’이란 제목으로 수차례에 걸쳐서 베네주엘라 차베스대통령의 정치적 치적과 사회주의적 정책들을 시리즈물로 연재했던 바 있었다.

당시 이명박정권은 아마도 ‘왜 한 좌파신문이 이런 터무니없는 연재기사를 내 놓았는지’, 그 이유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내심 관심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당시 좌파들이,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진지전을 통한 ‘통합대오’에 도취되었으면, 좌파 신문이 그런 엉터리같은 사회주의를 자랑하는 연재기사를 내놓았는지, 이명박정권은 그때 그렇게 소용돌이 쳤던 좌파내부의 혁명적 분위기를 파고들어서 대응했어야 했다.

이제 완전히 실존적 패러다임이 다른 두 진영이 대한민국에서 처절한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로 공존이 불가한 두 진영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70년 전 남북이 대립했던 한국전쟁과 같은 엄청난 ‘열전’ (Hot War)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아직 대오가 형성되지 않은 채, 궁지에 몰린 자유진영은 마지막 ‘낙동강전선’에서 피와 살이 튀는 ‘최후의 육박전’을 치루고 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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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 2020-11-01 17:40:12
제목이 아쉽군요. 6.25는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공산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르킨 대한민국 침략전쟁인데 "6.25와 같은 내전"이란 단어를 옳게 표현했는지, 단어의 횡포에 쓰러진 자유 대한민국인데 진정한 자유를 수호하는 정론지라면 좀 더 표현에 심사숙고 해야 하는데, 6.25를 내전이란 단어로 결부 시키면 침략전쟁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