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식. 이 행사는 민간이 주최하고 베트남 외교부와 한국대사관이 후원했다.
한-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식. 이 행사는 민간이 주최하고 베트남 외교부와 한국대사관이 후원했다.

종합국력 세계 7~10위권인 한국의 국제 위상에 걸맞게 민간공공외교(public diplomacy) 분야에도 선진국형 변화의 양상이 있어 흥미롭다.

22일 오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있는 코리아 글로벌 국제학교(이사장 안경환)에서 재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바다의 길, 사돈의 나라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식’이다. 이런 행사는 통상적으로 주베트남 한국대사관과 베트남 외교부가 주최하기 마련이다. 이날은 아니었다. 주최측이 ‘한-베트남 수교기념 한국위원회’와 한·베 전직 대사협의회, 코리아 글로벌 국제학교(Korea Global School)였다. 민간이 주최하고 베트남 외교부와 한국대사관은 ‘자리를 빛내주는 조연’이었다. 전형적인 선민 후관(先民後官) 선진국형 민간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현장이다.

12월 초부터 베트남 한인 교포, 이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인 학생, 베트남 초중고 학생·학부모, 교사들이 이날 행사를 직접 준비했다. 이어서 행사 이틀 전 한국에서 하노이로 날아간 ‘한-베트남 수교기념 한국위원회’의 민간인 20여명이 합류해, 한-베 민간 ‘주최측’이 완성됐다.

모든 행사 프로그램을 민간이 주도했다. 개회사는 베트남에서 48년 간 활동해온 안경환 이사장이 맡았다. 이경덕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공사는 축사를 했다. 1992년 한-베 수교 당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우정’에 비유하여 송백지우(松柏之友)라고 불렀다. 30년이 지난 이날 안 이사장은 한-베 관계를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깊은 관계"라고 했다. 송백지우에서 30년이 지난 오늘 어느덧 ‘산고수심’(山高水沈)의 관계로 깊고 넓게 발전했다.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한-베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현재 베트남은 한국의 4위 교역국이지만 곧 미국·중국에 3위 교역국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수교 첫해 4.9억 달러에서 시작한 교역 규모는 2021년 870억달러로 30년간 161배 성장했다. 베트남에는 금융기관 47개, 약 9000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현재 베트남 47개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제 1외국어로 지정했고 약 5만 명의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현재 53개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 과정을 운용하고 있고 약 2만 명이 수강중이다. 한국어를 전공해 한국 대기업에 입사하면 월급이 1000달러다. 중위 미국 기업 월급은 400달러다. 베트남 청년들은 한국어와 한류가 세계 일류 브랜드다. 명실공히 ‘산고수심의 관계’가 맞다.

이같은 한베 관계를 지금 ‘누군가’ 고의적으로 해치려 한다. 유투브에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팬들을 갈라놓는 가짜뉴스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삼성·LG가 철수를 준비한다"는 루머가 유투브에 계속 등장한다. 배후는 중국·북한으로 지목된다. 중국은 조용한 침공‘으로 한-베 관계를 갈라놓아야 자국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민간인 20여명이 주축이 돼 ‘한-베트남 수교기념 한국위원회’를 결성한 배경도 이같은 한베 관계를 갈라놓으려는 가짜뉴스를 퇴치하고그 배후를 끊어내려는 목적이 있었다. ‘한베 수교기념 한국위원회’의 공동대표는 퇴직 외교관 김석우·조원일, 그리고 안경환 이사장이다. 김 공동대표는 92년 한베 수교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을 역임했고, 조 공동대표는 당시 외교부 경제국장에 이어 제3대 주베트남 대사를 지냈다. 베트남에 대한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두 대표는 가짜뉴스로 한베 관계를 이간시키려는 제3국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파악한 후 현재 자유민주 진영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인 조형곤 전 EBS 이사 등 20여명과 힘을 합쳐 순수 민간 차원의 ‘한-베트남 수교기념 한국위원회’를 결성한 것.

21일 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한-베트남 관계현황과 미래 발전 전망'을 주제로 민관 협력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1일 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한-베트남 관계현황과 미래 발전 전망'을 주제로 민관 협력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21일 ‘한국위원회’는 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한-베트남 관계현황과 미래 발전 전망" 주제로 민관 협력 토론회를 가졌다. 본국에서 단체손님이 찾아오면 대체로 외국공관에서는 간단한 다과회 정도가 준비된다. 이날 오영주 베트남 대사는 작심한 듯 자신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맡았고, 정무·경제 담당 외교관들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 이에 ’한국위원회‘측은 외교안보·경제·교육문화·언론 등의 전문가 20명이 오랫동안 쌓아온 각 분야 경륜과 현장 경험을 전하면서 토론을 벌였다. 단순 간담회가 아니라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심포지엄 수준의 민간공공외교의 현장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베 관계를 이간시키려는 가짜뉴스 퇴치 문제, 한국 기업의 투자 활동, 북한인권 관련 현안 등이 논의됐다.

한편, 한국의 오페라 가수 손재형 씨는 30주년 기념 본행사에 우정 출연했고, 즈엉찐특 제3대 주한국 베트남 대사 등 전직 주한 대사 6명이 총출동해 전직 외교관들과 30년 해묵은 우정을 나눴다.

민간공공외교의 새 길을 개척한다는 취지로 결성된 ‘한국위원회’는 시작부터 민간외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숙박·음식 등 필요경비는 모두 자부담한다’ 등의 몇 가지 활동 원칙을 세웠다. 정부 외교공관에 속칭 ‘관폐’(官弊)를 끼치지 않으며, 민간외교 활동을 하겠다는 뜻이다. 박명철 성형외과의사 등은 20년째 베트남인 언청이 수술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번 ‘한베수교기념 한국위원회’는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강정일 권태오 김상태 김석규 김석우 김영자 김택중 박명철 손광주 손재형 안경환(공동대표) 양원석 유현수 이동헌 이범찬 조수봉 조영래 조원일 조형곤(단장) 차대욱 최창영 하은정 외. (가다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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