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정창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유엔총회가 12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본부에서 본회의를 열었다. 총회에서는 11월 16일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에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을 별도의 표결 없이 컨센서스(전원 동의)로 통과시켰다. 북한인권결의안이 컨센서스로 채택된 것은 지난 2012~2013년과 2016~2021년에 이어 9번째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주도한 올해 결의안은 한국 정부가 2018년 이후 4년 만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해 문안 협의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공개 발언을 통해 "결의안에 언급된 인권침해 행위가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적대 정책의 산물"이라며 "우리 사회주의 시스템을 굴복시키려는 어떤 세력의 시도에도 관용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은 지난 2005년부터 북한의 인권과 핵·탄도미사일 관련한 상황을 우려하면서 북한인권 문제를 매년 다뤄왔다. 이에 따라 유엔총회는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18년 연속 채택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북한의 인권 문제를 환기한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과 이에 대응한 북한 반박이 지난 18년간 통과의례처럼 반복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북한 주민의 인권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로드맵에 따라 핵과 미사일 능력을 지속 강화해 나가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북한의 체제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국가 조직이나 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북한은 전혀 다르다. 김씨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 노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의사(疑似)국가가 동심원 구조를 이루면서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다. 주민은 동심원의 최외곽에서 당과 국가의 지시에 따라서만 동작하는 객체이자 소모품일 뿐이다.

북한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배신할지언정 세상이 나를 배신하게 두지 않는다’라는 조조의 말이 철저하게 실천되고 있는 체제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아무리 강력한 제재와 비난을 가하더라도 김정은에게는 어떤 아픔도 주지 못한 채 주민들만 곤경을 겪고 있다.

이런 제한을 극복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줄탁동시(啐啄同時)가 필요하다. 어미 닭이 일정 기간 알을 품고 있으면 그 속에서 부화한 병아리가 여린 부리로 껍질을 콕콕 쳐서 밖으로 나가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를 줄()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미 닭은 알 속의 세미한 소리와 움직임을 알아채고 강한 부리로 밖에서 그곳을 쪼아준다. 이것이 탁(啄)이다. 이 두 가지 움직임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생명이 알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줄탁동시라고 한다.

줄탁동시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북한 주민 스스로 사회주의체제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에서 변혁의 기미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비사회주의 확산이 그 방증이다. 다만 당국의 저인망식 통제로 인해, 그 폭발성이 유보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김정은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각성과 체제변화 요구이다. 이런 변화 욕구를 응고시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김여정 하명법’이라 불리는 ‘대북 전단 금지법’의 우선적 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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