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15-끝) 1987년 체제와 민노총

근로자 당사자 권익 쟁취 투쟁이 정의·개혁·진보라 억지 주장
너도나도 더 많은 보호 받으려...노조를 약자의 무기로 규정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 등이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예술분야의 예술인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삼권 역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예술과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합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문화예술노동자 등이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예술분야의 예술인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삼권 역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문화예술과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지속 가능한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합

체제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형틀=구조이다. 사람과 국가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고, 유인하고, 정형화 한다. 문서화된 규범인 헌법, 법률, 국제조약이 대표적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국제 정치·경제 질서; 예컨대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만든 브레턴우즈체제, 미소 냉전체제, NPT(핵확산방지)체제 등이 널리 회자되는 구조=질서이다. 그런데 헌법이나 국제조약은 어떤 정신문화, 사상이념, 정치지형(정치적 대립구도와 역관계)의 산물이다.

체제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공인된 질서요, 정의·상식이다. 시간이 흐르거나 공간(국가)이 달라지면 달라진다. 1987년 체제는 곧 198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공인된 정의·상식이다. 1987년을 기점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것을 중장년 세대는 뚜렷하게 느낀다. 단적으로 재임 시 치적이 적지 않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장례를 치른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묻힐 자리를 찾지 못하여, 자택에 안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와 맞서 싸운 김영삼, 김대중 전대통령은 동작동 국립묘지 대통령 묘역에 묻혀 있고, 그 초상은 각각 국민의힘 과 민주당 당사의 큰 홀에 당당히 걸려있다. 하지만 전두환 전대통령의 초상은 국민의힘 당사에도 없다.

당연히 노동조합, 노사관계, 근로기준, 노동사건 판결과 공권력행사 등을 규율하는 정신문화·정치지형과 이 자식 격인 노동관계법과 법해석도 크게 바뀌었다. 1987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바뀐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바뀌었다. 이제 1987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상전벽해(桑田碧海)다.

1987년 체제의 특성은 헌법에 새로이 삽입된 조항;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 삭제, 헌법소원 제도 등에 어느 정도 드러나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신문화와 정치지형이 달라지면, 법 해석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헌법 제33조의 노동3권 보장 조항이다. 이는 제헌헌법부터 있었고, 이후 9차례의 헌법 제개정 과정에서 빠진 적이 없다. 하지만 별 의미 없는 좋은 말로 통용되다가, 1987년 이후에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국회와 정부는 근로자와 노조에 유리하고, 기업과 사용자에게 불리한 노동관계법령을 양산하였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도 꺼리게 하고, 법원의 판결도 온정주의와 포퓰리즘 색채가 많이 가미되는 등 대세를 추종하였다.

1987년 체제와 이를 추동한 민주·진보·노동·시민 운동권세력은, 어릴 때는 쥐(산업화의 그늘) 잡는 고양이로 보였는데, 크고 보니 사람(대한민국) 잡는 식인호랑이였다고나 할까? 이는 시간이 가면서 주류·지배적인 지위에 오른 정의·상식 내지 체제 유전자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민주화=반독재라는 도그마(dogma)가 있다.

민주화는 국민이 스스로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건설하여 새로운 가치의 균형구조(발전체제)에 도달하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들이 지목한 악의 무리; 친일·독재·수구·냉전·기득권 세력을 청산·척결하여,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항일민주·양심도덕·진보개혁 세력이 영구 집권하는 것이다.

자유보수를 다른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려는 경쟁 정치세력이 아니라, 아예 악의 무리로 규정하여 청산·척결·궤멸시키려 하니 선거는 전쟁이 되고, 정치는 본말이 전도되어 버렸다.

정치가 전쟁이 되면, 크고 잘 조직된 노동조합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확보해야 할 우군이 되면서, 노조에 대한 특혜가 점점 늘어난다. 그 극단은 문재인 정부다. 노조의 요구에 따라 2대 지침과 공공기관 단체협약·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민주노총의 대안으로 한국노총에 공을 들이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수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 하나 주류·지배적인 도그마는 근로자, 장애인, 여성, 호남민 등 자칭·타칭 사회적 약자·피해자의 권익의 법령에 의한 상향?확장과 당사자의 권익 쟁취 투쟁이 곧 정의·진보·개혁이라는 것이다. 이 도그마는 노동권과 재산권, 공무원 권리와 국민(납세자) 권리, 현세대 권리와 미래세대 권리 등 권리 간의 균형을 잡고, 또 권리와 의무, 권한과 책임, 위험(공헌)과 이익의 균형을 잡는 것이 진짜 정의요, 공정이요, 개혁이라는 보편 상식을 짓밟았다. 그 결과 너도나도 더 많은 배려와 보호를 받기 위해, 사회적 약자로 공인 받으려 하였다.

2억 원 내외의 생산수단을 가진 화물 차주들도, 시장 경쟁에 의한 근로조건 하향 압력을 받기는커녕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민간 기업을 수탈·억압하는 현대판 양반인 공무원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려 하였다. 이 도그마에서 대우조선하청 노조의 불법적 점거 농성, 화물연대의 불법적이고 공세적 투쟁과 불법 파업에 대한 민사상 책임 상한선을 두려는 ‘노란봉투법’ 제정 및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 등이 비롯되었다. 사실 전장연의 지하철 운행 방해도 마찬가지다. 민노총은 1987년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모순부조리의 집약이다. 민노총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고, 수명을 다한 1987년 체제가 본질이다. 이 병을 고쳐야 한다.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농업이 매우 중요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현대에는 토지를 자연환경으로 보면 몰라도, 생산요소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 현대의 생산요소는 자본과 노동 2가지다. 자본은 도구, 장비, 설비, 건물과 도로, 항만, 공항(사회간접자본) 등 돈 들여 만든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자본은 돈과 돈 들여 만들거나 구입한 사물이라 관련 규제는 효율과 안전에 충실하다. 사물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은 인간이다 보니,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자본에 비해 약자의 처지에 있었고, 또 여전히 약자인 노동이 많기에 온갖 사용=보호 규제가 휘감고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용(근로) 시간, 나이, 가격(최저임금), 환경, 계약해지 사유 및 절차 등 온갖 규제가 다 있다. 노동조합법 제2조에서는 다른 이익집단에게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파업?태업)’를 ‘쟁의행위’라 규정하고, 제3조에서는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을 명시했다. 최근에 불거진 노조 회계 불투명성과 부정비리도 노조 편향 법령 때문이다.

단적으로 노조법 제25조(회계감사) ①항은 "6월에 1회 이상 노동조합의 모든 재원 및 용도, 현재의 경리 상황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내용과 감사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제27조(자료의 제출)에서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벌칙 조항은 없다.

반면에 사용자에 대해서는 제81조(부당노동행위)①항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길게 적시해놓고,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노동 규제와 노조 보호는 기본적으로 인류의 지혜(지속가능한 경제사회 발전)와 양심의 총화이자, 노동의 이해와 요구의 반영이자, 그 시대 사상이념의 반영이다.

문제는 노동의 처지와 조건이 과거와 현재가 다르고, 또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자본에 대항할 수있는 수단을 충분히 가진 노동도 많고, 노동 전반이 자신의 교섭력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수단(사회안전망 등)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1987년 체제는 모든 노동을 약자로, 노조를 약자의 무기로 규정하여 획일적인 보호 규제를 가하다 보니, 자본과 노동의 창의와 열정을 질식시키고 있다. 바뀐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인 노동관계법은 사회적 약자를 죽이는 흉기고, 청년미래세대의 기회와 희망을 고사시키는 제초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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