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尹정부 노동개혁 제언-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

美 레이건·英 대처 업적서 보듯 지도자의 강력한 드라이브 필요
전임자 급여·노조비 공제 폐지...철도·지하철 노조부터 실시해야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 /임정혁 선임기자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 /임정혁 선임기자

올해에만 두 번씩이나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했던 화물연대가 이번에는 자진 철회로 백기투항했다. 파업에 돌입한 지 16일만인 지난 9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윤석열다움’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산업계의 손실이 커지는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이 특유의 뚝심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강력 대응으로 일관해 일궈낸 결과다. 화물연대에 동조했던 민주당은 악화되는 민심으로 사태가 불리해져 안전운임제 3년 연장조차 물건너 갈 위기에 직면하자 서둘러 3년 연장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내년을 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그 최우선 과제로 노동개혁을 꼽았다. 지난 12일에 열린 제12차 비상 경제·민생 회의·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합리적 보상체계, 노노간 착취 시스템 개혁을 들면서 ‘노사 법치주의’를 특별히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 용인돼 온 노동조합의 깜깜이 회계와 이에 기인하는 ‘노조 부패’에 대해 개혁의 칼을 대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윤석열 정부의 제1 개혁과제가 된 노동개혁. 새해 벽두부터 거센 개혁의 바람이 노동계와 산업계를 휩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문제 전문가의 의견과 진단을 듣고자 김준용 국민노동조합 사무총장을 만나 노동개혁의 방향과 방법 등에 관해 짚어봤다. 김 총장은 1975년 고등학교 중퇴 후 봉제공장 재단사를 시작으로 노동자 생활을 시작해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찐’ 노동운동가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 때, 그 발단이 된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구속자 3인 가운데 한 명인 노조위원장이 바로 그였다. 한때는 민주노총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사무차장을 지내는 등 민주노총 출범에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8년 제2기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할 때부터 줄기차게 노동개혁을 주창해 오셨는데, 노동개혁을 뜨거운 감자로 인식한 지난 정부들이 적극 나서지 못했고, 문재인 정권에서는 강성노조 휘둘리며 되레 역주행했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개혁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한다. 노동개혁이 성공하려면 어디에 중점을 두고 방향을 잡아야 하나.

"먼저 노동시장의 현실을 살피고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미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듯이 우리 노동시장은 양극화 돼 있다. 대기업, 공기업 등 여건이 월등한 노동시장(1차 노동시장)이 존재하는가 하면, 동시에 이중하청 문제, 특수고용자(플랫폼 노동), 청년실업, 중장년 실업 등으로 대변되는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노동시장(2차 노동시장)이 존재한다.

게다가 저성장 경제에 본격 돌입하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함에 따라 취업률이 떨어지고 비자발적 실업이 구조화돼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노동법제는 이러한 경제상황과 노동환경, 그리고 다양한 근로자와 다양한 직업군에서 터져나오는 근로자들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혁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노동개혁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한다고 보는가.

"지금의 노동법제 즉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등 관계법들은 1953년 제정된 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노동환경과 노동시장은 말하자면 1, 2차 산업혁명이 낳은 ‘굴뚝산업’ 중심이다. 지금이 어느 땐가? 이미 정보통신혁명을 지나 4차산업혁명이라는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미증유의 세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과거 지향적인 노동관계법으로는 노동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노동시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현재 형벌에 의한 기능유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규제 일변도의 노동법을 당사자 중심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이미 언론 지상에는 우리 노동관계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노측의 권리가 압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올바른 시장질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 당사자가 수긍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법령은 기존 취업자 보호에 치중되고 노동의 질적 부분은 도외시하고 양적인 부분의 기계적인 평등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러한 기득권 중심의 노동법을 능력에 따른 배분 및 권한에 비례한 책임에 중점을 둔 공정 중심의 노동법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국민들은 2015년 대타협이 노동개혁의 기초를 다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국은 입법에 까지 이르지 못하고 결렬됐다. 노동개혁이 성공하려면 노·사·정 3자의 대승적 협력과 희생, 국민적 합의를 통한 국회의 입법이 필수라고 보는데 새해에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는가, 아니면 다른 대안이라도 있는 건가.

"소위 ‘대타협’이 성공한 예는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굳이 성공 사례를 들라고 하면 2000년대 중반 독일 슈뢰더 총리가 주도한 하르츠 개혁 정도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나 영국의 대처 수상이 이뤄낸 업적처럼 노동개혁의 성공 사례는 대부분 정치지도자의 의지와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이루어졌다.

우리도 정부의 굳건한 개혁 의지 아래 진행되어야 할 것인데, 개혁의 많은 부분이 입법사항이라 다수당인 민주당의 초당적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현 정부가 노동개혁의 초석을 놓으려면 먼저 입법 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일종의 노동 관행이나 폐습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노조전임자에게 사측이 급여를 제공하는 타임오프제, 원천징수를 통해 노동조합비를 사측이 걷어주는 체크오프제 등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고 심지어 국제노동기구(ILO) 규정에 대한 위반 소지도 있으므로 폐기해야 한다. 타임오프제의 경우 돌이켜보면 1997년 민주노총이 합법화 될 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급지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름만 바꿔 부활한 퇴행적 제도의 전형이다.

또 체크오프제의 경우에는 현재 거대 양대노총의 조합원이 무려 200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굳이 기업이 노동조합비를 대신 걷어주는 것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특히 공기업, 공무원, 대기업 노조 등은 자생력이 충분하므로 체크오프 제도는 사멸될 때가 됐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제언하자면 올해 파업한 철도와 지하철 노조에서 체크오프제 폐지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정부가 노동조합의 깜깜이 회계에 대해 칼을 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정부가 노동조합에 회계 보고를 요구하는 권한은 이미 법에 규정돼 있는 내용이다. 노동조합법 제27조에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노동조합은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규에 근거하여 정부 부처, 지자체, 감사원 등에서 정부지원금 용처 관리 감독 및 투명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공기업, 공공기관, 공무원에 해당 되는 성과급 제도를 전면 재검토 필요하다. 예컨대 불법 파업으로 경영성과가 낮아진 공기업에 대해서는 성과급 최하위 대상자로 분류하고, 이러한 평가 기준을 공공기관 평가 시 명문화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기승전 경제’의 시대다. 윤석열 정부가 다른 국정과제 보다도 경제에 치중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런데 왜 노동개혁에 집착한다고 보는가.

"노동 개혁은 산업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내외 여건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산업계가 생산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데 노동시장이 그 중심에 있다. 노동시장에서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경직성이 계속 유지된다면 국민경제의 안녕은 난망(難望)한 것이다. 민생 회복과 경제 활성화의 선결 조건은 바로 노동개혁의 성공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개혁 방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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