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강규형

번스타인과 토스카니니는 원래 지휘자 대신 갑자기 대타 지휘를 해서 스타덤에 오른 전설적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변수가 너무 많다. 지휘자와 협연자의 갑작스러운 펑크는 물론이고 단원도 변수가 많다. 대타 지휘는 많지만 늘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이번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송년음악회도 벤스케 상임지휘자가 골절상을 입어 불과 일주일 앞두고 지휘를 맡을 수 없게 됐다. 3년 연속 결장이었다. 시일이 촉박해 외국에서 다른 지휘자를 초빙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다행히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김선욱이 코리안체임버오케스트라 지휘 때문에 한국에 와있는 상황이었다. 지휘 직후 현재 살고 있는 독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해프닝 끝에, 시향 정기콘서트 데뷔를 했다. 그것도 베토벤 ‘합창’으로. 그에겐 엄청난 기회이기도 했지만, 위기이기도 했다. ‘합창’은 신인 지휘자가 처음 지휘하기엔 버거운 곡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지휘에 입문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진지하게 하는 단계다. 마치 바렌보임이 간 길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듯한 느낌. 촉박한 시간에 큰 문제 없이 ‘합창‘ 완주에 성공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소프라노 황수미는 며칠 전 국립심포니와의 하이든 ‘천지창조’ 연주 때보다 훨씬 더 좋은 컨디션의 가창을 보여줬다.

김선욱은 예습을 철저히 한 듯 적절한 바톤 테크닉으로 무리 없이 악단을 이끌었다. 한마디로 싱싱한 합창이었다. 그에게 숙성한 잘 익은 ‘합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첫 지휘이고 아직 지휘 신인이기 때문이다. 심연에서 올라오는 무르익은 소리가 날 수는 없다. 앞으로 그런 숙성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김선욱은 이번 기회로 둘도 없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됐다. 그는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도약했다. 그는 계속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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