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특별법’의 내용과 처리 과정은, 우리가 누리는 자존과 풍요를 후세대도 누릴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했다. 중국, 미국, 대만, 일본 등이 반도체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울이는 국가적 노력(세금·보조금 지원 등)과 비교하면, 우리의 그것은 너무나 한심하기 때문이다.

법의 정식 명칭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다. 골자는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투자 금액에 대한 세금공제 비율을 대기업은 현행 6%에서 8%로 올리고,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8%, 16%를 공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25%, 대만은 자국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세금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올렸다.

세금 지원(공제)만이 아니다. 보조금 지원도 천문학적이다. 지난 7월 미국 의회는 미국 반도체 산업에 2027년까지 총 527억 달러(69조 원)를 지원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더하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432억 달러를 지원한다. 유럽연합, 일본, 대만도 각각 451억 달러, 148억 달러, 30억 달러를 지원한다. 한국처럼 기업 규모별로 차등화해서 지원하지도 않는다.

20세기 산업의 핵심이 석유였다면, 21세기는 반도체라는 것은 보편 상식이다. 21세기 국가의 명운을 가를 첨단산업·기술의 핵심인 AI(인공지능)·자율주행차·센서·5G·빅데이터 등은 대용량·고효율의 정보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첨단 반도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너무나 많은 미국·중국·일본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에게 반도체 산업은 ‘먹고 사는 문제’ 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이다. 이를 아는 여당은 당초 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상향하자 했다. 하지만 야당은 이를 ‘재벌 특혜’라면서 각각 10%, 15%, 30%를 주장했다. 그런데 기재부가 세수 감소(여당 안대로 하면 2조7000억 원)를 우려하여, 찔끔 공제안을 제시해 통과된 것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생산(투자)과 소비에 쓰일 돈을 세금으로 거둬 놓고도, 지자체들이 용처를 찾지 못한 여윳돈이 41.1조 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정말 무엇이 중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윤 정부는 야당과 관료의 안목을 벗어나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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