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험한 꿈’에 한국이 놀아나야 하나?
‘중국의 위험한 꿈’에 한국이 놀아나야 하나?
  • 이강호
  • 승인 2017.12.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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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방중에서 보인 굴욕적 행태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국격을 훼손한 중대한 과오다. 그런데 그 행태 이상으로 중대한 문제가 있다. 문대통령의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난 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문대통령은 “통 큰 꿈”이라는 낯간지러운 표현으로 시진핑의 중국몽에 대해 찬양의 언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귀국해서는 재외공관장을 소집하여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 동참에 박차를 가하라고까지 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이 중국몽 실현을 위한 전략으로 제시한 구상이다. 그런데 과연 중국몽과 그 전략인 일대일로 구상이 우리 한국이 찬사를 늘어놓으며 떠받들고 동참할 만한 것인가?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무엇을 뜻하는가?

시진핑은 이번 2017년 전당대회에서 중국몽을 32차례나 언급했다. 그런데 이 같은 언급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시진핑은 이미 2012년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된 직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3월 17일 있었던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폐막식 연설에서 중국몽을 9차례 언급했다.

당시 언급한 중국몽의 골자는 “중화민족의 부흥”과 “모든 인민의 행복”이다. 그런데 “모든 인민의 행복”이란 단지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건 아마 시진핑 자신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행복”이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몽의 핵심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다. 중화민족이 강력하게 떨쳐 일어서면 중국인민들도 당연히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 한다면 논리상 앞뒤는 어울리겠다.

중화민족의 부흥, 이것이 다른 말로 ‘강한 중국’을 뜻하는 것임은 별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와 학자들은 “중국의 모든 인민을 비롯해 全세계 사람이 부유해지고 균등한 부를 누리는 것이지 결코 중화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공자(孔子)가 <예기 禮記>에서 언급한 ‘천하위공 天下爲公’(천하는 누구의 사유가 아니라 공적인 것이라는 뜻. 천하는 인민 모두의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의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일 뿐 패권의 추구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곧잘 공자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그런 류의 ‘성현 인용’은 중국에선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치적 윤색 방식이다. 사실 중국이 말하는 천하위공의 진짜 함의는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문제 제기다. “세계는 미국의 것이 아니다”라는 게 그 진정한 의미다. 시진핑은 그에 대해 이번 2017년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2050년까지 세계최강국으로 우둑 서겠다”고 한 것이다.

류밍푸(류명복 劉明福)의 <중국몽 中國夢>

그런데 중국 국방대의 류밍푸 교수는 그에 대해 이미 솔직하고 적나라한 얘기를 한 바 있다. 그는 2010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중국몽 中國夢>에서 “손문이 꿈꿨던 것처럼 세계제일의 중국을 건설하고 미중 경쟁에서도 승리하여 중국시대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패권 없는 세계 건설”이라는 말은 빠뜨리지 않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일한 경쟁상대에도 최종 승리한 세계제일의 강국’이 말하는 패권 없는 세계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앞뒤가 안 맞는다. 더욱이 무슨 문학가도 아닌 중국 국방대 교수의 말이다. ‘소프트 파워’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류밍푸는 중국이 일본처럼 단지 경제강국에 머무는 게 아니라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미국을 추월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이 돼야 경제력에서의 우위도 더욱 확고히 굳힐 수 있다는 게 그의 관점이다. 이것이 패권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데이비드 리(David Daokui Li 리도규 李稻葵)가 말하는 중국몽

좀 마일드하게 중국몽을 말하는 이가 있기는 했다. 베이징의 칭화대학(청화대학 淸華大學) 경관학원(經管學院) 산하 ‘중국과 세계경제 연구센터(中國與世界經濟硏究中心)’ 소장 데이비드 리다. 전형적인 경제통이며, 미국 등 서구에도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大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캐나다 언론 <글로브앤메일 Globe and Mail>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인들의 꿈은 (…) 부활하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조(唐朝) 같은 옛 중국의 문명이 얻었던 존중과 지위 그리고 그것이 누렸던 자기만족적 성격을 되살려내는데 있습니다.”

이른바 패권 문제에 대해서는 선을 긋기는 했다.

“새 세계에서 중국은 결단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의 공동 패권도 추구하지 않습니다. 패권 추구는 우리 중국 문화의 유전 인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중국의 유교 전통에 들어 있지 않아요.”

확실히 국방대 교수와는 말 품새가 다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중립적인 제3자의 입장에 있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다. 그는 ‘중국 중앙은행 화폐정책위원회’에도 소속돼 있다. 그리고 베이징 시 인민대표의 한 사람이고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일원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외국 언론을 상대로 한 중국의 책임 있는 한 당국자의 외교적 발언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그의 발언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결코 온건한 얘기가 아니다. 우선 “당조(唐朝) 즉 당나라 때 중국이 얻었던 존중과 지위를 되살려내겠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당 제국은 당시 동아시아는 물론 실크로드 일대에까지 힘을 행사한 강력한 패권국이었다. 우리 민족사와 관련해 보자면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연거푸 침략을 거듭했으며, 백제를 무너뜨렸으며, 동맹을 맺었던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했던 나라다. 만약 오늘의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당시 당 제국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 게 될 것인가? 그것을 ‘패권’과는 상관없는 것이라 한다면 사전을 고쳐 써야 할 것이다.

“패권 추구는 중국 문화의 유전 인자가 아니며 중국의 유교 전통에 들어 있지 않다”고 하는 말도 그래서 외교적 수사 이상일 수 없다. 백번 양보해 데이비드 리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다 해도, 그것은 틀린 생각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문명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은 적이 없다. 힘이 있으면 힘으로 힘이 부족하면 말과 이념을 더해 중국의 우월권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유교적 국제질서에는 아래 위가 있을 뿐 호혜관계는 없다

패권의 추구가 유교 전통과 관계없다는 건 완전한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유교에는 사회와 국가 내적으로도 본래 그러하지만 국제관계에서는 더욱이 호혜적 관계라는 개념이 없다. 유교적 전통에서는 국제관계도 언제나 수직적 위계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정돈돼야 한다. 그것을 중국은 화이(華夷)질서라 했다. 자신들 중화(中和)가 중심이 되고 주변 오랑캐들이 자신들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이것이 유교적 국제질서며, 그러한 화이질서를 추구하는 게 중화주의(中華主義)다. 그 같은 중화주의적 화이질서가 특히 우리 민족에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우리는 역사적으로 익히 경험한 바 있다. 바로 사대(事大)다. 만약 중국이 다시 자신들의 유교적 국제질서의 꿈을 동아시아에서 재현하려 한다면 우리는 사대를 강요받게 된다. 이것이 패권 추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평화만을 바랄 뿐이라는 말은 패권의 야심을 감춘 나라들의 가장 상투적인 외교적 언사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히틀러가 바로 그랬다. 오늘날 히틀러의 그 말을 믿는 바보는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히틀러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 바보들이 실제로 있었다. 당시 영국의 수상 체임벌린이 그랬으며, 히틀러와의 평화협정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 평화협정이 사실상 히틀러의 본격적 도발의 국제적 여건을 만들어주었음은 이제는 다 안다. 그래서 패권에는 관심 없다는 말은 사실상 정반대로 그에 관심이 지대하다는 말로 듣는 게 맞다. 사실 패권에 관심이 있니 없니 따위의 언사 자체가 강대국의 길을 가는 나라만이 할 수 있는 발언 아닌가?

개인이든 국가든 립 서비스 형 수사를 잘 구사하다가도 한번쯤은 내심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기 일쑤다. 데이비드 리라는 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지배는 거의 틀림없이 끝났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게 그의 본의다. 미국의 시대는 끝났고, 중국의 시대가 오고 있으며, 중국은 그에 걸 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중국인으로서의 진정한 본심이다. 시진핑은 바로 그 같은 의지를 담은 외교노선을 분명히 했다. “적극작위(積極作爲)”다. “할 일은 적극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할 말을 하고, 행동할 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등소평 이래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조용히 힘을 키운다”는 노선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시진핑의 중국은 더 이상 도광양회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경제통으로만 알려져 있는 데이비드 리 같은 이가 대외적으로 말하는 당 나라 시대의 지위가 현재 중국 내에서는 명백히 당시와 같은 패권과 영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시진핑 자신이 그렇게 국제적 지위를 추구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근래 아시아의 모든 도발은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한국 언론들은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의 일련의 흐름을 보며 군국주의적 움직임, 극우 운운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 평가를 어떻게 하든 중국이 일본의 그러한 움직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간과되었다.

나카소네 전 수상은 한국에는 대개 일본의 강경 보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늘 “일본은 강국이 될 수 없으며, 강국을 추구하는 건 일본에 걸맞지 않으므로 일본은 군사적으로는 언제나 중급 수준으로 남는 게 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1955년 보수합동으로 자민당을 탄생시킨 요시다 시게루 이래 일본 주류 세력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적어도 한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요시다 이래 일본의 주류들은 언제나 방위분담을 회피하며 미국의 안보우산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기본 노선으로 해왔다. 1960년대 미일 안보조약 개정 당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좌익 반미투쟁 진영에 일부러 정보를 흘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요시다 이래의 그 노선은 2010년 센카쿠 분쟁을 거치며 결정적으로 발언권이 약화되었다. 분쟁은 중국의 선제 도발로 시작됐다. 일본은 당연히 그에 대응을 했다. 그러자 중국은 거센 반일행동에 돌입했다. 일본은 1972년 중국과 수교한 이래 중국에 대해 가장 대규모의 직접투자를 한 국가였다. 그런데 중국 내 일본 기업과 상점들이 무차별로 습격을 받았다. 그리고 희토류 수출을 금지시켜 일본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내 반중감정은 극적으로 고조돼 갔다.

중국은 일본과 센카쿠 열도 문제로 충돌했을 뿐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과는 남사군도 문제로 거세게 충돌했다. 덕분에 필리핀은 자국 섬에서 나가게 했던 미군을 다시 오게 해달라고 미국에 간청했다. 베트남도 미 함대에 항구를 제공하고 있다. 한때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던 베트남은 이제는 사실상 미국과 동맹상태다. 지금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이들 국가들에게 ‘중국은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 과연 어떻게 들릴 것인가? 중국이 뭐라고 되풀이해도 이제 그 말은 거의 ‘히틀러의 평화선언’처럼 들릴 것이다.

‘중국의 위험한 꿈’에 우리가 놀아나야 하나?

중국은 한국의 친중적 자세 자체가 큰 소득이지만 우리는 친중을 해도 중국으로부터 특별히 더 얻을 게 없다. 중국이 어떤 꿈을 갖고 어떻게 그것을 추구하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그러나 나아가선 미국을 군사적으로까지 추월하겠다는 야심을 담은 작금의 이른바 중국몽에 우리가 함께 놀아나야 할 이유는 없다. 첫째, 그 중국몽은 현실적으로는 우리에겐 다시 한 번 사대주의 시대와 같은 중국에 대한 굴욕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둘째, 뿐만 아니라 그 야심찬 중국몽이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와 관련해선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한울)라는 책이 좀 참고가 될 것이다. 2011년 있었던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를 정리한 책이다. 헨리 키신저, 파리드 자카리아, 니얼 퍼거슨, 그리고 앞서 인용한 중국의 데이비드 리 등 4인이 제목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청중 투표에선 토론 전에는 찬반이 각각 39% 40%로 팽팽했다. 그러나 토론 후에는 중국은 21세기의 패자가 될 수는 없다는 쪽이 62%로 이겼다.

줄을 잘못 서면 낭패를 입을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사회생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국가도 그렇다. 더욱이 설사 중국이 1위 국가가 된다 해도 우리가 중국에 대해선 줄을 설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다시 중국의 속국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강해질수록 우리에겐 지렛대가 필요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우리가 중국에 대해 다시 사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뒷심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이 우리의 국권을 침탈했지 않았느냐고? 일제시대는 35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조 500년 내내 중국의 속국으로 지냈다. 그러한 사대조공 체제는 직접적인 지배와는 다르다는 따위의 말은 쓸모없는 얘기다. 조선은 중국에 대한 자주성 없는 조공체제로 일관하는 동안 완전히 망가졌다. 중국은 얼마 전 한국에 대해 “미국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손봤을 것”이라는 얘기도 거리낌 없이 했다.

중국몽(中國夢)은 섣부르다는 점에서 중국 자신에게도 위험한 야심이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 한국에게는 더욱이 매우 위험한 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중국의 그 위험한 꿈에 찬양을 늘어놓으며 그에 들러리를 서자고 떠들고 있다. 이게 과연 합당한 얘기인가?

lgh@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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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권 2018-02-08 17:02:41
막막하다
청와대를 걱정하고 분노하는 세월을 언제까지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