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의 필수 신고국가인 중국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하면서 남은 국가는 미국·유럽연합(EU)·일본·영국 등 네 곳으로 좁혀졌다. 김포공항에 계류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

중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승인했다. 중국은 양사의 합병과 관련해 필수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국가인 만큼 ‘청신호’가 들어온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 미국·유럽연합(EU)·일본·영국의 승인이라는 고비만 넘기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최종 판가름 난다.

27일 대한항공은 중국 경쟁당국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기업결합 승인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대한항공이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승인받은 이후 나온 첫 필수 신고국가 승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최종 성사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해 14개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특히 필수 신고국가 중 1개국이라도 불허 결정을 내리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은 무산될 수도 있다.

14개 경쟁당국은 한국·미국·EU·중국·일본·튀르키예·대만·베트남·태국 등 9개의 필수 신고국, 그리고 영국·호주·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등 5개의 임의 신고국으로 구성돼 있다. 임의 신고국은 기업결합 신고가 필수는 아니지만 향후 경쟁당국 조사 가능성을 고려해 대한항공 에서 자발적으로 신고한 국가를 말한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한국, 중국, 호주, 튀르키예 등 10개국에서 승인 판정이 나온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월부터 중국 경쟁당국과 2년 동안 노선 독점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시정 조치 방안을 협의해왔다. 중국 경쟁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독점 우려가 있는 일부 노선에 대해 슬롯 반납을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슬롯은 시간당 가능한 여객기의 이착륙 횟수다. 슬롯을 많이 보유한 항공사일수록 여객기를 많이 띄울 수 있다. 이는 곧 항공사의 경쟁력을 의미한다.

대한항공은 중국 경쟁당국이 요구한 4개 노선에 더해 우리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안한 5개 노선까지 모두 9개 노선의 슬롯을 신규 취항을 희망하는 항공사에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 경쟁당국이 슬롯 반납을 요구한 노선은 서울에서 베이징·상하이·톈진·창사 등 4개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중복 노선인 서울~장자제·시안·선전, 부산~칭다오·베이징 등 5개 노선의 슬롯의 반납을 제안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국의 ‘벽’을 넘으면서 합병 작업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큰 중국의 승인은 현재 진행 중인 다른 경쟁당국의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미국, EU, 일본, 영국의 승인만 남겨놓고 있다.

영국은 대한항공이 제출한 시정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만간 승인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영국 경쟁당국은 서울과 런던을 운항하는 유일한 항공사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뿐이고, 두 항공사가 하나로 합쳐진다면 여객뿐 아니라 화물운송 시장에서 독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심사 연기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중국과 함께 양사 합병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미국은 추가 검토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미주 노선을 많이 가지고 있는 만큼 독과점 여부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자국 항공업계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조건을 조율하기 위한 일종의 시간 끌기로 해석되고 있다.

대한항공의 미주 노선은 지난 2019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 매출의 42%를 차지한 주력 노선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대한항공은 남은 경쟁당국과 협조해 빠른 시일 내에 합병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슬롯 반납이라는 출혈이 뒤따르면서 일각에서는 궁극적으로 대한항공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대한항공이 내놓은 중국 노선은 지난 2019년 기준 아시아나항공 매출액에서 17%를 차지한 주요 노선이다. 이 중국 노선은 대한항공에게도 미주 노선에 이어 매출액 비중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은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슬롯 반납을 요구할 경우 대한항공의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덩치를 키웠음에도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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