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와 집값 하락 우려에 '흥행 불패'로 꼽히던 서울 아파트 청약 시장 분위기가 1년 새 차갑게 식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재건축이 한창 진행중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고금리 기조와 집값 하락 우려에 '흥행 불패'로 꼽히던 서울 아파트 청약 시장 분위기가 1년 새 차갑게 식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재건축이 한창 진행중인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

내년 전국에서 35만가구 이상의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세종과 함께 집값이 가장 많이 하락한 인천, 대구는 23년 만에 최대 입주물량이 예고돼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후반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아파트 인허가를 늘렸던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 것이다. 임기 내내 주택공급을 억눌러 발생한 부작용을 의식해 막판 정책을 뒤집은 것인데, 이 역시 부동산시장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28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의 경우 전국에서 554개 단지, 35만2031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는 올해의 33만2560가구보다 5.85% 늘어난 것이다. 이를 시도별로 보면 경기가 10만9090가구로 가장 많다. 이어 인천 4만4984가구, 대구 3만6059가구, 충남 2만6621가구, 서울 2만5729가구 등의 순이다.

인천과 대구는 부동산R114가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23년 만에 가장 많은 입주물량이다. 빅데이터 업체 아실이 추산한 인천의 연간 적정 입주물량은 1만4824가구, 대구는 1만1828가구다. 적정 수요 대비 3배가량 많은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의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들어 인천과 대구의 집값 하락률은 각각 10.76%, 11.14%다. 이는 17개 시도 가운데 세종의 -15.31%를 제외하면 낙폭이 가장 큰 것이다. 가파른 집값 하락에도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설상가상의 형국인 셈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전셋값 역시 추락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월간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5.2%를 기록했다. 연말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이미 연간 기준으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4년 이후 최대 하락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천과 대구는 변동률이 각각 -10.2%, -10.9%로 10% 넘게 떨어졌다.

통상 아파트 전세는 수요가 많아 웬만해서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한 것은 2004년과 2018~2019년 3년 뿐이다. 그럼에도 최근 전셋값이 유독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주택임대차법 개정 때문이다. 지난 2020년 7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전셋값 급등과 함께 매물이 급감했는데, 당시 재계약했던 전세 물건들이 이번에 대규모로 풀리면서 공급과잉을 빚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리 급등에 따른 월세 전환으로 전세 수요가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입주물량이 집중된 지역은 전셋값이 더 큰 폭으로 내릴 수밖에 없다. 이에 집주인이 신규 전세입자에게 받는 보증금으로 기존 전세입자의 보증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역전세가 확산할 수 있다. 아울러 기존 전세입자는 보증금 미반환 문제로 새롭게 입주하는 아파트의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사례도 늘어날 수 있다.

내년 입주물량 중 4분의 1가량인 6371가구가 강남구에 몰려 있는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은 내년부터 2025년까지 강남권에서만 5만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강남구에서는 개포자이프레지던스 3375가구와 개포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6072가구가 입주한다. 서초구에서는 래미안원베일리 2990가구와 신반포메이플자이 3307가구, 강동구에서는 둔촌주공을 재건축한 올림픽파크포레온 1만2032가구가 입주한다.

지난 2011년과 2017년 강남 3구의 입주물량은 3000가구 이하였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내년부터 3년간 강남 3구에서 나오는 입주물량은 공급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전세 공포가 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실제 내년 2월 입주가 예정된 개포자이프레지던스는 올해 11월 초만 하더라도 전용 59㎡의 전세 호가가 13억원 내외였지만 최근에는 6억원까지 내려온 상태다.

강남권은 고가 전세가 많아 이 지역에서 신축 대단지 입주물량이 쏟아지면 다른 지역의 전세가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지난 2019년 송파구 헬리오시티 9510가구의 입주로 서울의 전셋값이 하락한 것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전세입자를 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게 대표적이다.

내년에 집주인들이 경쟁해야 하는 것은 지난 2021년 사상 최고가에 계약이 체결된 전세 물량이다. 이렇게 높은 가격에 계약이 체결된 전세 물량이 2년차를 맞았을 때 신축 대단지 입주물량이 쏟아지면 역전세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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