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일 때도, 민중후보로 나왔을 때도 민중의 삶이나 사회 발전에도 보탬 되지 않는다고 생각
-이념은 실천으로 검증되고, 수정 폐기될 가설일뿐. 역사 앞에 겸허하고, 실사구시에 치열해야

많은 지인들이 고 백기완씨와 얽힌 추억과 소회를 얘기합니다. 저도 좀 있습니다. 1994년 가을부터 6년간 기자촌 175-47번지에 살았는데, 골목 초입이 백기완씨 집이었습니다.
1991년 생 제 아들과 백기완씨 손자(1990년생?)가 친구여서 서로 집을 왔다갔다 하며 놀았고, 그 때문에 이런저런 인연이 좀 있습니다.
어느 신정 날 세배하러 갔다가, 당시 이름 날리던 극좌파 교수 10여명이 술 마시며 백 선생님이 무장 봉기하라 명령 내리면 봉기할 사람이 23만9천명(1992년 백기완 대선 득표수)이나 있다면서 호기롭게 건배를 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웃고 말았습니다.
각설하고, 사람이나 정치집단을 볼 때 그 동기나 마음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고, 실제적·실천적 결과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전자에 주목하면 문재인은 꽤 괜찮은 사람이지만, 후자에 주목하면 절대로 용서, 용납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로서는 백기완씨는 저렇게 늙으면 안되겠다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던져준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의식한다면 백기완씨나 민중후보 운동이나 민노당이나 문재인에게 호감을 가지기 힘듭니다.

저는 최근 10년간은 말할 것도 없고, 골목 이웃으로 살 때도, 심지어 1987년 민중후보로 나왔을 때도 백선생이 민중의 삶의 개선에도, 사회 발전에도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기완, 시인에 불과
운동권 하기 전 1학년( 1982년) 초에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읽었을 때도, 상상의 나래를 맘대로 펼 수 있는 시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으니!
정치 노선이나 행위의 실제적, 실천적 결과를 의식한다면, 모든 이념은 실천을 통해 검증되고, 수정폐기되어야 할 가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 앞에 겸허하고, 실사구시에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인식과 윤리에 대한 의심을 내려 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만과 독선이 붙을 곳이 없습니다. 선악, 정사 프레임이 들어설 곳도 없습니다.
저로서는 백기완씨는 저렇게 늙으면 안되겠다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던져준 사람입니다. 아마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그럴 것입니다.
백기완씨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산,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눈이 좀 흐렸을 뿐!! 열혈 청년이자, 의혈 지사요, 철아 할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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