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첩보 삭제 지시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장관을 재판에 넘긴 2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연합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첩보 삭제 지시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을 재판에 넘겼다.

2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이희동 부장)는 국가정보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박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로 서 전 장관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수사 결과 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당시 스스로 월북을 시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바다에 빠질 때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자진 월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실족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실족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정원도 사건 당시 이씨가 월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과 노 전 비서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살해된 이튿날, 국정원 직원들에게 관련 첩보와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서 전 장관은 국방부 직원 등에게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보안 유지 지시를 따르게 하고 관련 첩보를 삭제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로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허위 발표 자료를 작성해 배부하도록 한 혐의도 받는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씨가 살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께 열린 관계장관회의 직후 국정원에서 삭제된 첩보나 보고서는 46건, 국방부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에서 삭제된 것은 60건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첩보 삭제를 지시한 의혹을 받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서 전 실장은 피격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합참 관계자 등에게 보안 유지 조치를 하라고 지시해 의무가 아닌 일을 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서 전 실장은 피격 사망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뒤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몰아가도록 국방부·국정원·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보고서나 보도자료에 허위 내용을 쓰도록 한 혐의로 지난 9일 구속 기소된 바 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보안 유지를 지시한 이유 중 하나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제75차 유엔총회 녹화 연설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의 유엔 녹화 연설은 이대준씨가 피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26분부터 송출됐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 선언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씨 사건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속단하고, 이에 배치되는 첩보 및 보고서를 삭제했다는 것이다.

한편 서 전 실장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피격 사실을 은폐한 것이 아니라 최초 첩보 확인과 분석 작업을 위해 공개를 늦췄다는 설명이다. 박 전 원장도 첩보 삭제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서 전 장관은 보안 유지를 위해 첩보 배포선 조정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입장이 갈리는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거센 공방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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