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박인기

히브리 유대 왕국 역사상 칭송받는 지도자로 다윗과 솔로몬을 든다. 특히 솔로몬은 지도자의 지혜를 중시하고, 그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였다. (구약 역대하 110) 그가 썼다는 구약의 잠언서는 그런 지혜를 결집한 것이다. 솔로몬이 기도로 간구한 지혜는 우리말 성서에는 지혜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래 히브리어로 된 이 말의 원뜻은 듣는 마음이다. ‘지혜를 간구했던 솔로몬의 동기에 백성의 말을 잘 듣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듣기 싫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이게 네 말을 이런저런 이유로 듣기가 싫다라는 논리적 근거를 차분히 대령시킬 때 쓰는 말이 아님은 우리가 경험상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 말은 거부의 감정을 반사적으로 내뱉는 관용어(idiom)에 가깝다. 상대의 말을 억압적으로 중지시키려 할 때, 또는 말을 꺼내는 상대의 기를 애초에 죽여 버리겠다는 말이 듣기 싫어이다. ‘입 닥쳐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폭력적 자질이 저절로 배어 나온다.

원로 교육학자 이돈희 교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도나 법제에서 상당한 격을 갖추어서 발전해 왔지만, 우리 일상의 생활 속 민주주의는 숙성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일부 정치권이 배출하는 막말이나 거짓말, 그리고 편향적 선동의 언어도 생활 민주주의 낙후를 보여 주는 지표들이다. 나는 대화의 건강함을 도모하는 데서 생활 민주주의를 찾아야 하리라 본다. 그것은 곧 관계의 합리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傾聽)은 생활 민주주의 실천의 요체이다.

경청의 마음은 쉽지 않다. 경청의 심층에는 모종의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넉넉한 마음이 없이는 온전한 경청은 일어나지 않는다. 듣기는 단순한 기능(skill)이 아니다. 듣기는 덕성(virtue)의 범주에 속한다.

새해에는 듣기 싫어라는 말이야말로 정말 듣기 싫은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말만 쓰지 않아도, 제법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다. 생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 물론, 좋은 부모, 좋은 선배, 좋은 직장인의 품격에도 성큼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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