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 않은 새해의 시

 

새해가 왔는가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는 와 버렸는가
어제 방구석에 쌓인 먼지도 그대로
내 서가의 해방기념시집의 찢어진 표지
그 위를 번져 가는 곰팡도 아직 못 쓸고 있는데
새해는 불현듯 와 버렸는가
파헤쳐 놓은 수도공사도 끝내지 못했는데
태어나리라던 아기예수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여지껏 나무에 대룽대룽 매달려
애잔한 잎들은 팔랑이는데
못다 쓴 원고뭉치는 그대로 밀려 있는데
미처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새들도 있는데
불현듯 불현듯 새해는 왔는가
기다리던 첫눈도 나리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왔는가
헛꿈을 잔뜩 안고 돌아와 저 혼자 설레이는
놈팡이처럼 새해는 왔는가 와서 무얼 하려는가
모듬판에서 돌아오는 밤
이미 자정을 넘겨 볼에 스미는 찬 기운
텅 빈 호주머니와 마음 속으로
아무거나 새것이라면 마구 채워야 하는 걸까
해마다 와서 속절없이 가 버리는 것이
새해일까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는데
보리싹 파릇파릇 움 틔우는 저 들판이
후루룩 겨울참새를 허공에 뿌리는 그 속마음은
무엇일까

이동순(1950~ )

 

/이욱진 기자
/이욱진 기자

☞‘미처 맞이할 겨를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 길손처럼’ 새해가 왔다. 해묵은 것들을 다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 좋으련만 머릿속은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것들로 와글거린다.

‘나라는 깨어지고 깨진 틈서리는 서로 붙을 생각조차 품지 않고’ ‘적적한 마당귀를 덮고 있는 김장독 이엉 사이로 시궁쥐만 분주히 쏘다니는데’ 새해는 또 와버렸다. 그렇긴 하지만 얼어붙은 들판에는 ‘보리싹이 파릇파릇 움을 틔우고’ 있다.

어김없이 봄은 또 올 것이고 들판의 보리밭은 물결칠 것이다. 새해에는 마음을 챙겨보자. 비우고 내려놓으면 평화가 온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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