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선대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선대위 쇄신안 발표를 시청한 후 외부로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총괄선대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선대위 쇄신안 발표를 시청한 후 외부로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5일 윤석열 후보와 결별하며 선대위를 떠났다. 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선대위, 비대위에 참여해 선거 승리를 이끌어내며 속칭 ‘선거의 귀재’또는 ‘킹메이커’로 불린다.

그가 참여해 승리를 이끌어낸 선거만 해도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시절의 2021년 재보궐선거 등이 있다.

특히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계파 싸움으로 인한 안철수와 동교동계 의원들의 탈당으로 만신창이 상태에 가까웠던 더불어민주당을 이끌며 승리를 가져왔다.

또 2021년 보궐선거에서는 21대 총선에서의 역사적인 참패로 궤멸 상태에 가까웠던 국민의힘 선대위를 맡아 승리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의 선거 감각은 높게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몸담았던 곳마다 마찰을 일으키며 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데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면서도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다. 그냥 단순한 지지가 아니라 정동영의 대선 후보 등록 회견 때부터 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물론 당시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원내교섭단체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소수정당’ 신세였고 대선 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며 통합민주당이 되긴 했지만, 타 정당의 대선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왔다.

김 위원장은 2011년 12월에 중도 확장을 노린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회에 영입돼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과반 152석을 차지하면서 총선에서 압승했다.

김 위원장은 이 여세를 몰아 2012년 9월부터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박근혜 후보와 결별했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경제민주화 의제와 공약은 중도층의 표심을 끌어모으는 효과는 있었지만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새누리당이 채택하기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20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 곧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돼 2월부터 더불어민주당의 수장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17대 대선, 19대 총선, 18대 대선까지 9년간 거듭된 패배로 인해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하지만 전권을 위임받은 후 절대적인 공천권을 행사하며 분란을 일으켰다. 중진급인 정청래 의원은 물론 당 내 고위급인 이해찬 전 의원까지 직권으로 공천 탈락시켰다. ‘친노패권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자신은 비례대표 2번 순번을 받으며 ‘셀프공천’ 논란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1당을 차지하며 김 위원장은 ‘선거의 귀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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