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장금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롤 모델이에요."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대장금>의 장금이는 항상 우리와 함께했어요. 우리가 장금이었고, 장금이는 우리였어요." "장금이 흙탕물이 된 우물물을 끓이는 것을 보고 물을 끓여 먹기 시작했어요." "안젤리나 졸리보다 장금이 이영애가 더 좋아요."

올림픽 중계로 드라마 <대장금>이 결방되자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방송국은 결국 중계를 중단하고 <대장금>을 다시 내보내야 했다. 한국 식당이나 가게 앞엔 이영애의 브로마이드를 얻으려는 현지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교민들이 지나가면 인파 속에서 장금이를 흉내낸 ‘어머니’ ‘어머니’ 한국말 떼창이 거리를 흔들었다. 2008년 아프리카 A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A국은 오랜 독재로 정치는 불안하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절대다수 국민은 하루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국민의 10%는 에이즈에 걸려 있었고, 많은 사람이 매일 콜레라로 죽어 나갔다. 국영방송사라도 드라마 제작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고, 외화가 없으니 외국 프로그램을 사 올 방법이 없었다.

그저 철 지난 할리우드 영화나 값싼 1980~1990년대 미국 프로레슬링만 재탕, 삼탕 방영할 뿐이었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라, 하루하루가 그저 무료하기만 한 A국에서 형형색색의 화면, 색다른 복식, 생전 처음 보는 요리, 치밀한 구성, 하층민 출신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고 마침내 왕의 주치의까지 되는 내용은 현지인들에겐 인간승리요, 희망이요, 꿈이요, 대리만족이었다.

<대장금>이 A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서울에서는 A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시청률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인터넷도 미비하고 조사기관도 제대로 없는 아프리카에서 시청률을 조사하라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대사관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시청자 퀴즈를 내는 것이었다. ‘대장금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1번 한국어, 2번 중국어. 3번 일본어. 노동자 한 달 월급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금액을 상금으로 걸었다.

천차만별 크기의 엽서가 폭발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종이에서부터 노트북 크기 정도의 종이, 라면 상자를 대충 자른 골판지까지 정답을 써서 보내왔다. A국은 규격 엽서나 규격 봉투가 없으니 아무 종이에 우표만 붙이면 된다. 이렇게 도착한 엽서가 500만 장에 가까웠다. A국의 TV 보급률을 고려할 때 TV가 있는 전 가정에서 적어도 한 장 이상 보낸 것으로 추산되었다. 시청률 100%였다. 정답률도 99%가 넘었다. 오답 1%도 틀릴 것을 대비해 중복 참여한 사람이 여러 번 보낸 것으로 추정되었으니, 결국 정답률도 100%로 볼 수 있었다.

사실 A국의 <대장금> 방영은 한국대사관의 작품이었다. 대사관의 제의와 전폭적 지원으로 A국이 <대장금>을 방영할 수 있었다. 스파이세계 용어로 한국대사관의 이런 활동을 ‘영향공작(Influence Operation)’이라고 한다. 외국의 주요 인사나 매체를 활용하여 자국이 바라는 방향으로 현지 외국의 변화를 유도하는 공작이다. 아시아 사람하면 제일 먼저 인도인을 연상하고, 동양인 얼굴이면 중국인만 생각하던 A국에서 한국의 존재감과 현지 교민의 위상을 높인 쾌거였다.

대사, 영사, 서기관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오지 삼인 공관에서 외교부는 본부 훈령처리만도 바쁘다. 명맥만 유지해도 대단한 일이다. 공작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공세적 활동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보이지 않는 국익을 창출해 내는 일, 국가정보기관이 하는 일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보이지 않는 국익을 창출해 내는 일, 대사관에 파견된 정보요원이 하는 일이다. 이제는 퇴직한 B요원,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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