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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삼라만상의 근원 본질을 밝히는 지적 탐구, 이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학문이다. 어원인 고대 그리스 필로소피아philosophia(앎·지혜에 대한 사랑)가 서구 여러 언어에 비슷비슷한 철자로 정착했고, 그게 ‘哲學’으로 번역됐다. ‘확실한(哲) 배움·앎(學)’을 뜻한다. "도무지 철학이 없어…" "그 나름의 철학에 따른 결정이다." 등 일상적 표현에선 ‘조리있게 설명 가능한 원칙과 소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哲學’이라는 번역어를 쓰기 시작한 사람은 19세기 중후반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였다. 처음엔 ’希哲學(확실한 앎을 희구하는 학문)이라 했다. 송나라 주돈이『통서(通書)』의 구절 ‘선비는 현명함을 희구한다(士希賢)’에서 따왔다. 한자문화권의 고전을 응용한 셈이다. ‘希哲學’이 1874년경 ‘哲學’으로 자리잡는다. 아마네가 메이지(明治) 정부 초기의 지적 지도자 중 한사람이라, ‘哲學’은 문부성(=교육부)에 채용돼 널리 퍼졌다.

이 신조어가 일본유학생들을 통해 한국어 중국어로 편입된 것은 1910~20년 전후다. 이들 신지식인들은 자국의 언어 근대화를 주도했다. 귀국 후 언론인·교사·관료로서 작가를 겸하며 활자매체에 글을 쓰는 게 그들의 시대적 소명이었다. 군사·행정·법률 등 국가 근대화에 언어의 근대화는 필수불가결하다. 새로운 어휘·개념을 자기화 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은 후 법률어·행정어·학술어로 거듭나고, 모어 전통과 어우러져 문학의 언어가 됐다.

예를 들어 ‘그녀의 행복이 나를 기쁘게 한다’, 이런 식의 ‘사물을 주어로 한’ 언어습관은 근대 이전 동북아에 없었다. 별도의 문법용어(物主文)가 필요할 만큼 생소했던 것이다. 시제(時制) 없는 중국어처럼 술어의 과거형도 불분명했다. 결국 서구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어법과 수사(修辭)까지 생겨났다. 지구촌 수천 개 언어 중, 고급 문학·학술이 가능한 경우는 한국어를 포함해 40개 미만이다. 특히 수십년 만에 이 수준에 도달한 예는 한국어가 유일하다. 일본어 근대화의 성과를 그대로 갖다 쓴 덕분이다. 베트남은 그 점에서 불운했다. 한자문화권의 일원이었으나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이 편의를 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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