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이성복(1952~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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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수필 ‘인연’은 화자(話者)와 ‘아사코’와의 세 번의 만남을 술회한다. 첫 번째는 소녀 때, 두 번째는 숙녀 때, 그리고 세 번째는 부인(夫人) 때였다. 화자는 그 중 세 번째 만남을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해바다’도 그런 감정이 모티브가 되었다. 차이가 있다면 ‘인연’에서는 만났고 ‘서해바다’는 만나지 않는다는 것. 알다시피 서해바다는 개펄이 잘 발달해 있다. 사람들은 개펄보다 모래톱 해안을 더 좋아해, 피서 철이나 연휴 때 교통체증을 마다하지 않은 채 가까운 바다를 놔두고 멀리 동해바다로 떠난다.

경북 상주가 고향이고 대구에서 성장한 시인의 바다는 동해바다가 더 가깝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서해바다와 개펄을 심상(心像)의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아마도 온갖 생명이 숨 쉬는 개펄의 이미지 탓일 게다. 시구대로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인다’.

화자가 그리워하는 ‘당신’의 이미지는 시원한 푸른 바다가 아니라 ‘진펄에 몸을 뒤척이는 바다’이다. 그런데 화자는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라고 진술한다. 서해바다로 간다는 것은 ‘당신’ 이미지와의 맞닥뜨림, 그러니까 해후(邂逅)를 의미한다. 그러나 만남 대신 이별 상태의 그리움을 선택한다. 그건 달리 말해 ‘당신이 계실 자리’와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는’ 것, 즉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런 반면 만남은 ‘당신 계실 곳’을 남겨두지 않는 행위다. 그 결과,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 파도치며’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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