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후예들, 러시아를 낳고 인도를 만들다
징기스칸의 후예들, 러시아를 낳고 인도를 만들다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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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의 몽골 원정군과 튜튼 기사당의 전투 상상도.
바투의 몽골 원정군과 튜튼 기사당의 전투 상상도.
 몽골에서 시작된 世界史 <6>

대륙 시대에서 해양 시대로

몽골제국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대국이 러시아다. 13세기에는 아직 러시아라는 나라가 없었다. 동유럽의 삼림(森林)지대에는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온 루-시사람 들의 마을이 흩어져 있었을 따름이다.

바투(Batu, 몽골의 유럽원정군 총사령관, 킵차크 한국汗國의 창건자, 1207-1255, 징기스칸의 손자)가 하얀 오루드(일명 황금의 오루드=궁정)를 세우고부터, 루-시사람 들은 몽골제국의 높은 문화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어 그때까지 수준이 낮았던 문화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정교의 신앙도, 몽골사람들의 보호 덕택으로 확산되었다.

大러시아의 기원

그중에서도 모스크바 마을이 번창했다. 모스크바 마을은 마을 영주가 하얀궁정에 정기적으로 파견되어 근무하면서 이것을 기화로 선진문물을 흡수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공(公) 이반1세는 1328년, 하얀 궁정의 오즈베다칸으로부터 대공(大公)의 자리를 받고 루-시 마을들로부터의 징세(徵稅)를 맡았다.

그의 자손인 모스크바 대공 이반 4세는 모계로부터 징기스칸의 핏줄을 이어받고 있어서, 자신도 칸 칭호를 갖고 싶었다. 때마침, 카잔(Qazan,타타르스탄공화국의 수도)에 내분이 일어났는데, 이를 기회로 삼아, 카잔을 탈취하여, 차르(Tsar, 슬라브어로 ‘칸’)라고 자칭(自稱)했다. 그러나 이반 4세는 크리미아에 머물던 하얀 궁정의 정벌(征伐)을 받게 되어 굴복하게 되었다.

그런데 1575년, 징기스칸가의 황자(皇子) 시메온 베크브라트비치를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정의 옥좌에 앉히고 ‘전(全) 루-시의 차르’ 로 삼아, 충성을 맹세하고, 그 다음에 다시 양위를 받아, 차르라고 칭했다. 이것이 러시아의 기원이다. 그렇게 되었어도, 모스크바는 여전히 하얀 궁정에 복종하면서 공세(貢稅)를 지불하고 있었다.

모스크바가 몽골의 지배로부터 처음으로 독립한 것은 18세기의 표토르 1세 때였다. 표토르 1세는 독립의 표시로서 1721년, 임페라토르(라틴어로 황제)라는 칭호를 채용했다. 그러한 사정 때문에 러시아는 몽골제국의 계승국가인 것이다.

인도도 몽골제국이 만들어낸 나라다. 13세기의 중앙아시아에 징기스칸의 2남 차가타이(Chaghatai, ?-1242)의 영토가 있었다. 차가타이 가문은 14세기 중반에 동서로 분열되었다. 西차가타이 가문은 얼마 안 되어 티무르(Timur, 1336-1405) 라는 몽골 사람이 탈취해서,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대제국을 쌓아올렸다. 그러나 그의 자손은 1500년, 북쪽으로부터 온 주치(Jochi, 1181-1227)가문인 우즈베크(Uzbek) 사람들에게 사마르칸트를 빼앗기고 중앙아시아로부터 쫓겨났다.

 

동서의 역사를 잇다

티무르의 자손인 바부르(Muḥammad Bābur, 1483-1530, 무갈제국의 창시자)가 남하하여, 인도로 들어가서, 1526년, 델리에서 인도왕이 되었다. 이것이 무갈제국의 기원이다. '무갈((Mughul, Mughal 무굴)'이란 '몽골'이란 말이다.

무갈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
무갈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
바부르는 1526년 4월, 로디 왕조의술탄 이브라힘과 델리 근교의 파니파트에서 접전을 벌여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이브라힘의군대를 격파하였다.
바부르는 1526년 4월, 로디 왕조의술탄 이브라힘과 델리 근교의 파니파트에서 접전을 벌여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이브라힘의군대를 격파하였다.

이 무갈제국을 이어받은 것이, 잉글랜드여왕 빅토리아가 1877년, 초대 황제로 취임한 인도제국이다. 이 인도제국에서 분리 독립된 것이 현대의 인도연방과 파키스탄이다. 몽골제국이 자본주의경제를 전파한 것과 현대의 여러 국가들을 만들어낸 것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 몽골제국이 처음으로 동의 중국세계와 서의 지중해세계를 직접 연결시켜서,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당장 다른 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 정세(情勢)를 창출한 것이다.

때문에, 13세기부터 그 뒤의 역사는 그때까지처럼 중국세계의 역사와 지중해·서유럽세계의 역사를 각각 따로따로 서술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몽골 제국 이후부터는 세계사를 쓸 때 동서의 역사를 같이 다루어야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즉 세계사는 몽골제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또 몽골제국의 출현으로, 대륙이 무대였던 시대가 끝나고, 해양의 시대가 새로 시작되었다.

보통 대항해 시대가 1415년 포르투갈사람이 지브롤타(Gibraltar)의 대안(對岸)인 세우타(Ceuta)를 공략해서 아프리카대륙의 서안항로를 열었을 때에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유라시아대륙의 변방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새로운 이권을 찾아서 바다로 진출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렇게 해서 해양의 시대가 시작되어, 현대의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해양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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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2018-01-04 11:41:10
내용도 좋지만 삽입된 그림들이 참 좋습니다. 덕분에 공부 많이 하고 갑니다. 좋은 연재 부탁드립니다.

조찬옥 2018-01-04 11:14:42
오! 몽골 제국이 자본주의 경제를 전파했다니
이거야 말로 새로운 역사적 지식 득템입니다. 득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