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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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도하에서 카자흐스탄 소식을 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깨닫기도 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영향력 확대가 두드러졌다. 지금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원을 믿을까 말까 하는, 열세의 우크라이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러이사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선 건너다보고만 있더니, 이번엔 아무런 저항 없이 신속하게 카자흐스탄으로 투입됐다. 카자흐스탄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에너지 가격 급등에 분노한 시위대에 맞서 러시아의 개입을 요청했고, 푸틴은 기꺼이 응했다. 강대국 부활을 꿈꾸는 푸틴의 야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가시화된 셈이다.

사실상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보호령 상태다. 인구 1900만~2000만 명 중 20%가 러시아인인 카자흐스탄이 서유럽의 약 3분의 2 면적으로 구소련에서 분리된 게 불과 30년 전 일이다. 소련 붕괴에 따라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는 갈가리 찢겼다. 석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중앙아시아 심장부라는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 카자흐스탄은 다른 구소련 위성국들과 달리, 크렘린 통치시대에 대해 별다른 분노가 없는 것 같다.

뉴스를 듣다 보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개입 요청에 푸틴이 응한 속도를 보면 그의 속내를 알 수 있다. 분명 새로운 러시아의 지도자가 되려 하며, 다시 한번 세계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 상황이 진정돼도 러시아군은 눌러앉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러시아는 석유 및 각종 천연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에 자문을 제공하며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다. 안보 부문을 장악한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의 풍부한 자원에 관심 있는 외국 기업들을 압도하리라 본다.

러시아군의 카자흐스탄 진입이 이 지역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돼 있다. 강력 진압을 적극 지지한다는 중국, 허둥대는 미국, 석유 및 기타 자원 수입을 위해 저마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한국·일본도 있다. 한국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30년대 스탈린의 명령으로 극동지역으로부터 강제 이주당한 약 10만 명의 한인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당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춥고 척박한 땅, 가혹한 조건을 헤치며 살아야 했다. ‘되살아난 러시아’를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카자흐스탄에서 부활한 러시아의 존재감이 다른 나라들에게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다. 그러나 푸틴은 구소련 국가들에 러시아군을 배치함으로써 영향력과 통제력을 국경 너머로 확장하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도 노릴 것이다.

러시아군이 트럭·장갑차·비행기 등으로 카자흐스탄에 밀려드는 모습을 카타르 도하의 알자지라 TV에서 볼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의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요청하기 전 이미 시위대를 향한 ‘경고없는 조준사격’을 명령한 상태였다. 전 대통령 이름을 따 개명한 수도 누르술탄(구 아스타나)과 공항, 한인들 집중 거주지인 최대 도시 알마티 주변에 무장한 러시아군이 빠르게 방어시설을 구축하는 중이다.

러시아 군대에 대한 카자흐스탄의 반응은 소련 막바지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상황과 정반대다. 그러나 소련군에 격렬하고 집요하게 저항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생각하면, 카자흐스탄의 보통 사람들이 러시아를 환영할 것이라 상상하긴 어렵다. 어쨌든 푸틴은 한반도를 포함해 ‘러시아 힘의 르네상스’에 이를 기회를 남의 약점을 틈타 누리고 있다. 이번 사태에 담긴 중대한 함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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