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안전보장 확약 요구 수용해야"...美 "확고히 반대" 수출통제 경고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 안보회담에 참석한 미국·러시아 대표단. 웬디 셔먼(왼쪽)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주재 미 대표부에서 열린 미·러 안보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8시간 ‘논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AP=연합
‘우크라이나 사태 논의’ 안보회담에 참석한 미국·러시아 대표단. 웬디 셔먼(왼쪽)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주재 미 대표부에서 열린 미·러 안보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8시간 ‘논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AP=연합

위기가 고조되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방안을 놓고 러시아와 미국이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장시간 ‘논의’를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각각 수석대표로 나선 가운데 8시간 동안 진행됐다. 러시아의 병력 증강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긴장 완화 및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금지를 포함한 러시아의 안전보장안 확약 요구가 주된 의제였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셔먼 국무부 부장관은 이날 회담 후 브리핑에서 "그야말로 가능성 없는 (러시아의) 안보상 요구를 확고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집결된 러시아 병력의 귀환 등을 긴장 완화 조치로 제시한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동맹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집중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 회담을 ‘협상’이 아닌 ‘논의’로 규정, "서로의 우선 순위와 우려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며 아예 기대치 자체를 낮춘 모습이다.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역시 같은 시간 브리핑을 통해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이나 의도가 없음을 미국 측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단, 서방이 러시아의 안전보장 확약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걸었다.

돌파구 없이 끝난 회의를 두고, 정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없어 ‘알맹이 빠진 논의’란 지적도 제기됐다. 우크라이나의 뜻과 무관하게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독자적으로 러시아와의 외교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아 뚜렷한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자 우크라이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라도 군사 개입은 안 한다"는 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언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불거진 갈등이지만, 러시아 의도대로 진행되는 중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실제 미·러 협상을 러시아가 먼저 제안해 분위기를 주도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휴전·포로 교환·분쟁지역 국경 민간인 통과 허용 등 3단계 신뢰 구축 조치를 비롯해, 양국 정상 간 직접 대화 등 정치적 외교적 타결을 원한다는 내용의 협상안을 러시아에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스위스 제네바 미국·러시아 고위급 회담에 이어 12일 벨기에 브뤼셀 NATO, 13일 오스트리아 빈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 협상이 줄줄이 예정돼 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가 참여하는 자리는 마지막 빈 회의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 직후 북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당시,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낸 이승만 정부의 외교력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