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1908~미상)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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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현해탄을 건너간 김기림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격동기 변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겪었다. 새 시대 새 물결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동경인 동시에 두려움이다.

그때로부터 100여 년 지난 오늘날 또다시 새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바로 디지털 물결이다. 역사적 격동기 한 시인이 느꼈던 것처럼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미래세계는 예측불허다. ‘흰 나비가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듯’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이상적 세계를 향해 갔으나, 결과는 배신과 좌절뿐이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바다와 나비’가 창작된 시대적 배경, 현대 문명에 비판적이며 미래에 대해 반유토피아적인 모더니즘 정신으로 이 시를 읽는 것도 좋지만, 비평을 배제한 독법(讀法)이 더 좋지 싶다. 한 마리 나비 같은 청순한 공주가 세상물정 모른 채 ‘청무우밭’의 이상향을 좇아갔다가 좌절해서 돌아왔다는 것. 세상풍파를 겪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한층 성숙해졌지만 꿈을 잃어버려 ‘서거프다’(서글픔+막막함). 동경의 대상이던 푸른 바다는 삼월(三月)에도 꽃이 피지 않는 꽃밭으로 변해버렸고, 더 이상 꿈을 쫓지 않는 나비(공주)의 허리에 창문으로 들어온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더 이상 꿈을 쫓지 않는 나비(공주)는 우리의 자화상(自畵像) 아닐까. 그렇긴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꿈을 재생(再生)하고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동경과 꿈, 설렘이 없는 삶은 산송장 상태다. 만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이런 상태를 거부한다. /작가,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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