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막걸리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술을 받아 오라는 어른들의 심부름에 낑낑대며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다녔던 일은 나이 먹은 세대에겐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존재한다.

고무신도 마찬가지. 산업화가 궤도에 올라 운동화나 구두를 신을 때까지 고무신은 ‘국민 신발’이었다.

이 같은 기억에는 선거가 함께 끌려 나온다. 일명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다. 선거가 매수(買收)로 얼룩진 흑역사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충격을 빌미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가 재원의 한계와 효율성 문제로 반대하고, 국민 다수도 부정적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오자 슬그머니 접었다. 그에 앞서 소득 하위 88%에게 주었던 해괴한 재난지원금 때는 경기도에 한해 도지사 권한으로 나머지 12%에게도 지급했다. 이재명 표(標) 현금 살포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을 2개월 앞두고 다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꺼냈다.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전에 가능하고, 가능하게 해야 한다. 25조~30조원 정도가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며 "최소 1인당 100만원 정도는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상 첫 2월 추경 편성을 통해 전국민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자는 ‘이재명 표 추경’에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행정부도 태도를 바꿔 힘을 싣고 있다. 헌법이 행정부에 예산 편성권이라는 나라 곳간 열쇠를 맡긴 것은 포퓰리즘에 맞서라는 뜻인데,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회계연도가 막 시작된 현 시점에서는 재원의 대부분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 밖에 없다.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다면 기성예산부터 구조조정하는 등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공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 선거 때마다 영화의 유명 대사처럼 ‘묻고 더블로 가는’ 막장 공약이 판치는 이유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 이재명 후보의 기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수 백조원 규모의 선물 보따리처럼 보이겠지만 부담은 오롯이 납세자인 국민과 청년세대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재명 후보는 "국가 빚이 나쁘다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강변한다. 생색은 자신이 내고, 책임은 떠넘기는 후안무치 발상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포퓰리즘이 ‘장사’잘 되는 이유를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대중의 단순화 경향이다.

그에 의하면 유권자들은 세상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국내 제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리가 나오면 관세를 인상해 즉각 수입을 금지시킨다는 정치인의 말에 혹한다. 대형마트로 인해 전통시장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면 대형마트의 입점을 금지하거나 영업을 제한하겠다는 정치인의 손을 들어준다.

무리한 관세 부과는 무역분쟁을 불러오고, 대형마트를 규제해도 전통시장으로의 매출 전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복잡한 현실은 외면한다. 이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책임을 물어 비난할 사람을 잘 찾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만이 선거를 통해 이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 대증적(對症的) 포퓰리즘 대신 다소 복잡하더라도 현실성과 실효성 있는 공약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선진 시민사회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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