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료만 내고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가 62%에 달하는 가운데, 올해 보험료가 14.2% 인상되면서 선량한 가입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사와 직접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
실손보험료만 내고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가 62%에 달하는 가운데, 올해 보험료가 14.2% 인상되면서 선량한 가입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사와 직접관련 없는 자료 사진. /연합

가입자만 3500만명이 넘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이 난리다. 올해 보험료가 평균 14.2% 오르면서 가입자들은 ‘보험료 폭탄’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보험사들은 역대급 적자에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10년 후엔 적자가 11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등 실손보험은 보험사들에게 이미 ‘골칫덩이’가 된 상태다.

지난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직접 의료비 부담률은 33.3%다. 병·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받은 진료비가 1000만원이라면 가계가 부담하는 비용이 333만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하는 비용이 667만원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직접 의료비 부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3%보다 13%포인트 높다. 매달 수 십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음에도 충분한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2019년 기준으로 64.2%에 머물러 있다.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001년 실손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재정을 늘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보다 실손보험을 통해 국민들이 의료비 일정 부분을 부담토록 한 것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의 의무 일부를 민간 보험사에 떠넘긴 셈이기도 하다.

당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을 미래 먹거리로 여겼다. 상품 포트폴리오의 50%를 차지하는 자동차보험의 적자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체상품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보험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제 지출한 의료비의 100%까지 보장하는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보험료 급등의 주요 원인이 된 보험사 손해율 문제는 2010년부터 불거졌다. 보험료 수입에서 보험금 지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102%에 달하는 등 처음으로 100%를 넘겼기 때문이다. 손해율이 102%라는 것은 보험사가 보험료 100원을 받고 보험금으로 102원을 지급했다는 의미다.

실손보험은 1세대, 2세대, 3세대, 4세대 상품으로 진화해 왔다. 보험사 손해율이 높아지면서 보장 혜택을 줄이거나 자기부담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상품 조건을 바꾼 것이다. 그럼에도 2020년 보험사 손해율은 132.0%에 달했다. 실손보험 도입 초기 보험사들의 경쟁 속에 판매된 1세대, 2세대 상품이 손해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지난 2000년 말 기준으로 1세대는 24.4%, 2세대는 53.7%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2세대 실손보험은 이미 단종돼 손해율을 낮춰줄 신규 유입이 없는데다 자기부담금 0원 등 보장 혜택도 넓다.

특히 3세대까지는 개인이 받은 보험금 액수에 따라 보험료가 오르는 구조가 아니다. 보험사 손해율에 따라 인상된 보험료를 가입자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월 2만9000원의 보험료를 내면서 252차례나 병·의원 치료를 받아 보험사에서 타간 보험금이 연간 7419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쇼핑’인 것이다. 반면 보험료만 내고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가 62%에 달한다. 선량한 가입자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의료쇼핑 등 도덕적 해이, 그리고 이로 인한 보험사의 천문학적 적자는 대부분 ‘비급여’ 진료항목에서 발생한다. 통상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은 급여, 적용되지 않아 손실보험이 보장해주는 진료항목은 비급여로 구분된다.

비급여 진료항목의 경우 시행 사유나 횟수 등 진료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진료의 양과 종류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비급여 진료비 결정권이 병·의원 등 의료기관에 있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도 막을 방도가 없다. 오히려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비를 의도적으로 높게 청구하거나 금품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환자를 유인하는 병·의원도 있다. ‘과잉진료’다.

이 같은 폐단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또한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비급여 진료항목을 심사해 적정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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