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업계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대립각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갈등 봉합의 기회를 놓친 중소벤처기업부의 무능이 현 사태의 원흉이라 지적한다. /연합
완성차업계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대립각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갈등 봉합의 기회를 놓친 중소벤처기업부의 무능이 현 사태의 원흉이라 지적한다. /연합

국내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놓고 3년간 이어진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갈등이 임계치에 이르렀다. 완성차업계가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무조건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즉각 중소업체 괴멸을 주장하며 정부 차원의 규제를 부르짖고 있다. 특히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중소벤처기업부의 안일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적극적 갈등 봉합은커녕 구경꾼 모드로 상황을 방관해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4일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관련 심의위원회를 열고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 도출에 실패했다. 심의위원들은 실태조사 결과, 주요 쟁점 등의 자료가 현재가 아닌 2019년에 기반해 있어 판단이 어렵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오는 3월 회의를 추가 개최해 결론을 내기로 하고 중소벤처기업부에 최신 데이터 보완을 요청했다.

이번 심의위원회의 파행은 일정부분 예견된 결과였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수년간 미뤄왔던 회의를 등 떠밀려 급하게 개최한 탓이다. 한참 철 지난 자료밖에 내놓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등을 떠민 이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이다. 정 회장은 지난달 23일 "완성차업계는 새해부터 사업자 등록 등 중고차 사업 시작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일방 선포했다. 더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결정 장애를 참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중고차 시장 개방 이슈는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해제된 2019년 2월 본격화됐다. 법적 빗장이 풀린 완성차업계는 진출을 시도했고, 중고차 매매업계는 재지정을 신청하며 극렬히 반대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완성차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심사를 거쳐 같은 해 11월 재지정 부적합 의견을 중소벤처기업부에 보냈다. 산업 규모가 27조원대로 커졌고,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도 시장 개방이 옳다는 판단이었다.

시민과 소비자단체들도 이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국내 중고차 시장에 허위·미끼매물, 강매, 침수·사고차 판매, 주행거리·성능 조작 등 불법행위가 판치고 있어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완성차업계의 진출을 통한 선진화가 꼭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절차대로라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를 토대로 지정심의 기한인 2000년 5월 내 결론을 내면 됐다. 하지만 정 회장의 일갈이 있기까지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발만 의식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현재 완성차업계는 법적으로 중고차 시장 진입에 문제가 없고, 3년간 거듭된 협상 노력에도 중고차 매매업계가 합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양측이 참여하는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발전협)’를 구성해 중재안을 내놨지만 중고차 매매업계는 끝내 합의를 거부했다. 정 회장은 "글로벌 완성차 산업이 단순 판매에서 수리·정비, 중고차 매매까지 차량 생애 전주기 서비스 경쟁으로 진화 중"이라며 "한국만 세계 흐름에 역행하면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고 강한 우려를 전했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난 11일 완성차업계의 대장 격인 현대·기아차를 타깃으로 ‘사업조정’을 신청하며 재차 시간끌기에 나섰다. 사업조정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서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분쟁조정 제도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이를 수용하면 완성차업계의 진출시기 연기 등을 권고할 수 있고, 불이행시 벌금은 물론 2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상황이 극으로 치닫게 된 결정적 원인은 중소벤처기업부에 있다고 지적한다. 법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소극적 대처로 일관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중고차매매사업 발전협의회에 참여했던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이제 중소기업을 보호할 법·제도적 한계 없이 시장이 일시 개방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중기부의 직무유기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힐난했다.

중고차 시장 개방을 줄기차게 촉구 중인 교통·자동차 분야 시민단체들 역시 비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중고차 매매상들의 불법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자동차시민연합은 법정시한이 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한 중소벤처기업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완성차업계의 진출은 시세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온라인 플랫폼 중심으로 중고차 시장을 선진화할 계기가 될 것"이라며 "중기부가 중고차 매매업계의 이권 보호가 아닌 소비자 후생과 산업발전을 위한 대승적 결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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