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 처음 내놓은 국보 2점 중 1점...北서 베낀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2004년 남북화해 무드로 논란 덮여...국보 '금동삼존불감'도 새주인 찾기

송미술관이 국보 두 점을 경매에 내놨다. 간송(澗松) 전형필의 안목과 사재로 설립·운영돼 온 ‘간송미술관’은 지난 100년 ‘우리문화재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귀중한 문화재들의 유실·해외유출을 막은 공로가 독보적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의 14일 입장문에 따르면, 모기업 없이 운영하다 보니 지출·수입의 만성적 불균형을 겪어왔고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국가지정문화재 최상급인 국보가 경매에 출품되는 것은 처음이다.

오는 27일 케이옥션 메이저 경매에 나오는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구 국보 72호)과 ‘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73호)의 시작가(價)는 각각 32억~45억원(72호), 28억~40억원(73호)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이 약 30억원에 사들였다. 이번 역시 "유물의 가치·가격 등을 평가한 뒤 경매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2004년 서울에서 전시된 북한의 고구려 유물 ‘연가7년명금동일광삼존상’(좌). 국보 최초로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 소장 ‘계미명금동삼존불 입상’(우). 약 18년전 서울전시회에 북한 당국이 보낸 유물이 오른쪽 진품의 모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

경매에 나온 두 국보 중 하나,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약 18년 전 기억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높이 17.5㎝의 삼존불상 광배 뒷면에 ‘계미년(563년)’이라고 새겨진 불상이다. 2004년 서울에서 전시됐던 북한의 국보급 유물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상’은 이 간송미술관의 진품을 본뜬 현대의 모조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 장충식(1941~2005) 동국대 교수가 ‘2004 남북 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에 나온 같은 모양의 불상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을 언급하면서(한국불교미술연구) 관련 사실이 기사화됐다(2004년 5월 4일자 조선일보).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운동 상설협의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민화협)가 북한의 문화보존지도국과 함께 북한의 고구려 유물 227점의 서울 전시회 ‘2004 남북 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을 열었다. 북한 당국이 보내 온 유물에 아무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장 교수가 이 전시회에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로 소개된 ‘연가 7년명 금동일광삼존상(延嘉七年銘金銅日光三尊像)’ 뒷면의 명문(銘文)이 우리 국보 119호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 명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은 남한에서 보기 드문 고구려 유물이다. ‘연가’란 현존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로, 이 유물 발견 이후에야 알려지게 됐다. 장 교수는 "남한에 있는 국보 불상 두 점을 앞뒤로 하나씩 그대로 베낀 모조품"이라고 말했다. 불상의 앞면을 비롯해 전체 모습은 간송미술관이 이번에 내놓은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을, 뒷면의 명문은 국립박물관의 진품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을 베꼈다는 얘기다.

장 교수가 제시한 ‘결정적 증거’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당초 남한 학계에선 ‘연가 7년명금동여래입상’ 명문의 일부를 ‘제입구회현세불(第卄九回現歲佛)’로 판독했다. ‘29번째 현세의 부처’라는 뜻인데, 훗날 ‘제입구 인현의불(第卄九因現義佛 29번째 인현의불)로 수정된다. 북한 불상엔 잘못 판독했던 부분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오타까지 베껴 표절 흔적이 남는 것 같은 이치다. 이 방면의 또 다른 권위자 강우방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역시 장 교수 주장을 자신 있게 지지했다. 똑 같은 명문이 서로 다른 두 유물에 새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게 ‘남북화해 무드’라는 대세에 묻히고 말았다.

모조품 가능성이 보도된 지 약 18년이 지났지만, 전시회를 주도한 통일부·민화협이나 북한 측으로부터 항의가 있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전시를 위해 공식 국외 반출하는 유물조차 가짜를 보낸 북한의 처사를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북한의 그 ‘가짜 불상’ 원본인 간송미술관의 진품이 이번에 경매로 새 주인을 찾는다. 간송미술관의 역사와 함께, 씁쓸한 북한 관련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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