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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個 사람人’ 두 글자가 오늘날 의미의 ‘個人’이 된 것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individual의 번역어로 자리잡으면서다. 영중(英中)사전의 영향 속에 많은 어휘들이 혼재했다(單·獨·單一個·一個人 등).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individual을 고유어 ‘hito(사람)’로 번역하다 결국 ‘dokuichikojin獨一個人’을 쓰게 됐고, 독서 시장에서 ‘獨’ ‘一’이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 Individual은 당시 가장 난해한 개념의 하나였다. ‘Society사회’가 그랬듯, 경험하거나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근대어 산책13). ‘사회’의 근본적인 연관어가 ‘개인’이다. 중세인들은 ‘특정 지역·신분에 속한 아무개’ ‘어느 집안 몇 대 손’이었을 뿐, ‘사회 속 개인’이 아니었다.

‘개인’을 향한 가능성은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열린다. 마르틴 루터 이래 여러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성직자들에게 독점된 ‘말씀’, 사제를 통해서만 소통하던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했다. 각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한 영혼’으로서 절대자와 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인간의 참모습을 절대자 앞에 선 ‘단독자’로 봤다. ‘탈(脫)주술·이성의 시대’‘산업화’ ‘도시화’ 등 ‘근대’를 정의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지만, 어떤 측면·차원을 집중 조명하는가의 차이다. ‘개인의 발견’은 그 다양한 설명을 꿰뚫는 키워드다. 수 백년 정치·경제·사회적 격동 속에 ‘발견’해 나간 게 ‘개인’이었다. 모든 소중한 가치·개념들처럼, 이 역시 실현으로 가는 노정에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떼’로 살아왔고 ‘떼’의 논리에 기반해 크게 성공한 생명체다. 그럴수록 ‘개인’의 논리에 견제 받아야 한다. ‘개인주의’가 통째로 질타당하는 것은 ‘가짜 개인’이 많아서다. 웰빙 추구는 ‘개인’의 자유·권리지만, 더 많이 누리는 누군가를 선망한 나머지 ‘나 아닌 그 사람’이 되려 한다면 참된 ‘개인’일 수 없다. ‘개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개인(개인됨)이란 뭘까’, 이게 삶의 최대 화두여야 한다. 자신의 선택과 노력 없인 안 된다. "개인은 탄생하기도 유지되기도 어려운 종족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다(개인이라는 기적, 박성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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