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국가정보기관, 어디로 가야하나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세계 반도체·자동차 업계 경영진과의 영상 공급망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올리며 미국내 반도체 생산에 투자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세계 반도체·자동차 업계 경영진과의 영상 공급망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올리며 미국내 반도체 생산에 투자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자연재해로 인한 국제공급망 교란은 생산·제조를 중국에 의존하는 국제 분업체계의 리스크를 드러냈다. 미국은 이 틈을 타서 반도체 등 전략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이 주도하는 틀로 다시 재편하려고 속도를 내고 있다. 미중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첨단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게 됨에 따라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2013년 시진핑이 집권 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미중간 새로운 냉전시대가 열렸고, 코로나 팬데믹이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를 빌미로 포토레지스트·폴리이미드·에칭가스 등 우리 반도체 생산의 핵심 소재를 수출규제 하고, 중국과 호주간 관계 악화로 호주산 석탄 수입이 막히면서 중국의 요소(尿素) 생산이 차질을 빚게되고, 중국이 요소 수출을 규제하자 국내에서는 요소수 대란이 일어났다. 이렇듯이 주변국의 경제민족주의가 드세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하시라도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진핑이 경제민족주의를 내세워 자유경제질서에 도전하자 미국이 민주주의 기술동맹으로 응전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비용최소화라는 경제의 합리성(효율성) 시대는 가고 경제의 안정성 우선의 패러다임으로 변화되고 있다. 경제논리가 압도하던 시대에서 안보가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경제와 안보의 분리가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세계 반도체·자동차 업계 19개사 경영진과의 영상 공급망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올리며 "이것이 21세기의 인프라스트럭처다"라며 참여 기업들에게 미국내 반도체 생산에 투자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한 백악관이 100일간 조사해 지난 68일 발표한 공급망 회복력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전략적 광물(희토류) 등을 4대 공급망 취약 전략품목으로 선정하고 미국내 생산을 장려하고, 미국 생산이 어려운 품목은 미국 중심의 국제협력체제를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고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 미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의 12%만 담당하는 반면 대만은 20%, 한국은 19%를 담당하며 첨단반도체의 경우 92%를 대만이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배터리셀의 경우 75%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으며, 의약품은 인도와 중국의 의약품 생산시설이 세계 공급의 다수를 점하고 있고, 전세계 원료의약품(API) 생산시설의 42%가 중국과 인도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동 보고서는 한국을 74차례나 언급했으며, 삼성, SK, LG 등 한국기업의 이름이 40여 차례나 등장한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주요 협력 대상국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 삼성 등 한국기업은 백악관 요청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와 전기차 밧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공급망을 주제로 15개 동맹국과 별도 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런 공급망 재편 전략에 부응해 정부조직도 개편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실(NSC)은 산하에 경제안보위원회(ESC)를 만들어 경제를 안보의 논리로 다루고 있다. 일본은 재빨리 경제안보를 전담할 조직으로 경제안보상을 신설했다. 일본 정부는 또 국가안보에 핵심인 산업과 기술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안전보장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반도체, 전기자동차(EV)용 첨단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4종을 중요 물자로 지정해 동맹국이나 우호국에서 조달하는 방안에 대한 지원 등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제안보상은 국가안전보장국(NSS·국가안보실 격)을 소관 부처로 해서 총무성, 외무성, 방위성, 경제산업성, 재무성, 문부과학성, 경찰청, 공안조사청, 금융청 등에 대한 관련 업무를 총괄·지시하게 된다. 아마리 간사장이 단순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이 아니라 첩보를 뜻하는 인텔리전스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경제안보와 관련한 일본 정보기관의 업무를 조정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중 대립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2019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화이트국 배제 조치 후 경제안보 분야의 조직과 인력을 대폭 강화해 왔다. 외교안보 사령탑인 국가안보국에는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경제반이 신설됐으며, 부처별로 조직 신설과 인원 증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움직임은 중국에 핵심 제조역량을 구축한 기업들에게는 전략적 재조정을 요구하고, 통상대국인 한국에 새로운 도전을 던지고 있어 국가적 차원의 응전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대전환이라는 도전에 우리 정부와 기업도 조직적으로 응전해야 한다.

경제와 안보가 하나로 융합,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경제안보 시대에는 정부의 대응 역량에 따라 국익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 공급망 회의를 주재하며 이 문제가 국가 최우선의 과제임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도 기시다 총리가 새 내각에 경제안보상을 신설하는 등 체계적인 대응에 나섰다.‘경제안전보장을 통상백서 등에 핵심 목표로 명시하고 관련 법과 제도 정비도 서두르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 주력하는 기업들도 경제안보 담당 임원직을 두고 정부와 협의채널을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기업 채널은 인공지능(AI) 등 기술 유출 방지 대책,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 감소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지난 10월에야 "경제·기술·안보 등이 연계·통합된 글로벌 현안 이슈에 대해 치밀하게 점검·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관급 회의체인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가 출범했지만, 비정기적으로 만나는 회의체로 시의적절한 대응이 가능할 지 미지수다. 외교부가 경제안보 TF를 구성하고 팀장을 차관보급으로 격상하고 안보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으나 위상이나 역할, 조직 역량 면에서도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럼 국가정보기관 차원에서는 체계적인 경제안보 관련 정보수집과 분석 그리고 첨단기술에 대한 산업보안 강화 등을 담당할 차장 단위의 조직을 신·재편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국정원은 통일벼 및 미사일 기술 입수 등 과거부터 국익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노무현 정부들어서는 국익전략실을 신편해 성과를 내는 등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우리 기업이 세계 일류의 기술을 보유하면서 산업방첩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산업방첩 활동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이런 업무를 보다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경제안보를 전담하는 전담 조직을 신설해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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