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가까이에 '회색 코뿔소'(gray rhino)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연합
한국 경제 가까이에 '회색 코뿔소'(gray rhino)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연합

‘회색 코뿔소’는 끊임없는 경고 신호가 있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을 뜻한다. 예상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과 대조적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며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 긴축 전환 과정에서의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 충격 최소화, 금융권 위험관리 강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경제에 회색 코뿔소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경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고 위원장을 비롯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경제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도 제기됐다. 이들은 우리나라 금융·재정 분야를 책임지는 최고위 공직자들이다. 그만큼 이들의 경고는 묵직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실질적 대응은 미약하다. 미국의 긴축정책과 중국의 성장쇼크로 금융시장을 비롯한 한국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일부에서는 국내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가계부채 부실의 표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긴축정책은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미국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이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경우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본 유출이 가시화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11일 연임을 위한 상원 금융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더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7.0% 올라 4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은 신흥국에 미국의 긴축정책에 대비하라는 주문까지 내놓았다. IMF는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 신흥국 시장의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높아진 금리를 좇아 달러가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각국의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우리나라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한국은행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환율방어와 물가급등 억제를 위한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내 금리의 급격한 상승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가계부채 부실화로 이어지는 ‘퍼펙트 스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성장쇼크도 리스크 요인이다. 중국의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0%로 1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앞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 18.3%에서 2분기 7.9%, 3분기 4.9%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연간 경제성장률은 8.1%다.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확산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강력한 방역 정책,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5%를 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4.3%, JP모건은 4.9%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금융시장의 개방도가 낮아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더라도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중국경제가 급격한 경기 침체에 빠질 경우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액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시장이다. 이 때문에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 압력을 받는다는 것이 민간 경제연구기관의 분석이다.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위기가 한꺼번에 오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