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이재구

연초 북한이 동해상으로 마하 5, 마하 10 초음속 미사일 등을 잇달아 발사했다. 방향만 바꾸면 우리나라 전역이 사정권에 들고 단 1분 만에 서울 상공을 위협한다. 더 냉엄한 로켓 미사일의 현실과 마주치게 됐다.

‘모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고다드가 1937년 제대로 된 첫 로켓 발사 이후 이 분야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고다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V-2 로켓보다 3년 먼저 더 진보된 로켓을 만들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외면했고 그는 사망했다. 미국이 달에 가기 위해서는 결국 독일에서 귀순한 과학자 폰 브라운의 새턴 로켓에 의존해야 했다.

냉전 시대 미·소 우주 경쟁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이 구 소련의 세르게이 코롤료프다. 그는 1957년 5월 사거리 8,000km인 세계 첫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자 로켓인 ‘R-7’ 개발의 주역이다.‘ R-7’은 그해 10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도 배출했다. 그는 소련 유인 달 우주선 개발을 지휘하던 1966년 1월 대장암 수술 중 사망했다. 이틀 후 소련 관영 프라우다신문은 코롤료프 부고 기사를 실었다. 훈장을 달고 찍은 그의 사진과 함께였다. 서방의 암살 위협 때문에 냉전 기간 내내 ‘수석 디자이너’, 또는 ‘글라브니 콘스트룩토르’라는 가명으로 살아가던 그였다.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미·소 유인 달 착륙 경쟁의 역사가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언젠가 달에 가게 될 것이다. 새 대통령은 "1960년대가 가기 전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라고 선언하고 피치를 올린 케네디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과기인들에게 힘을 실어줄 인물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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