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전하는 소식


슬레이트 지붕에서 기와지붕으로,
빗방울이 북소리같이 울리며,
전염병처럼 퍼져,
내게 전하는 소식,
가지고 싶지 않은 자에게
전달되는 밀수품

벽 바깥 창문 함석 조각이 울리고,
자음과 모음들이 덜거덕거리며 한데 합치면,
비는 말한다
나밖에는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언어로

깜짝 놀라 나는 듣는다
절망의 소식을,
빈곤의 소식을,
그리고 비난의 소식을,
이 소식이 내게 전해져 불쾌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나는 소리 높여 외친다,
비도, 비의 고발도, 그리고 그것을 내게 보낸 자도
두렵지 않다고,
적당한 시간에
밖으로 나가 그에게 대답하리라고


귄터 아이히(Gunter Eich 1907~1972)
김광규 번역

 

/게티이미지

☞코로나우울이 자못 심각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세먼지까지 덮쳐 하늘이 뚜껑처럼 대지를 짓누른다. 세균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경고해왔다. 핵보다 세균이 더 미래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우리는 ‘아무 죄도 없는데’ 이런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

시인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으로 복무하다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갇혔다. ‘비가 전하는 소식’은 이때 쓴 작품이다. 수용소철창 밖 ‘빗소리가 전하는 소식’은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절망’ ‘빈곤’ ‘비난’ 이란 단어로밖에 설명될 길이 없고, 그것은 ‘가지고 싶지 않은 자에게 전달되는 밀수품’처럼 곤혹스럽다.

암울한 철창에 갇힌 시인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적당한 시간’ 즉 석방을 예감했듯, 코로나팬데믹은 극복될 것이다. 그때 시인처럼 밖으로 나가 ‘두렵지 않다고 소리 높여 외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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