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커크
도널드 커크

바이든 대통령의 1주년 기념 기자회견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으리라 본다. 민주주의 이상이나 미국의 국내외 이익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 확신 못하겠다는 느낌을 받았을 게 틀림 없다. 그 중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 걱정이 가장 컸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 위협에 놓인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멍청하게 우왕좌왕 하면서, 아시아 수억 명 사람들의 생존과 이익이 걸린 문제에 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초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며 장거리 미사일과 핵탄두 시험을 암시하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관련 발언과 아시아를 무시하고 지나간 것 중 어느 쪽이 더 겁나는 일일까? 사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시아를 ‘무시’했다기보다 아시아에 대해 ‘무지’했을 뿐이다. 이번 바이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중국의 위험성에 관해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은 언론들도 책임이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바이든의 서툰 언행은 미국의 미래에 좋은 조짐이 아니다. ‘작은 기습’과 ‘전면 침공’을 구분하고 결국 ‘할까 말까’를 따지는‘ 문제로 만들어 버린 어리석은 발언은 이뿐이 아니었다. 백악관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방조한 적 없다며 자기들 실수를 슬쩍 덮고 넘어갈 것이다. 좋다, 하지만 우리는 바이든이 입에 담은 나머지 장황하고 공허한 말들을 궁금해 해야 한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러시아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게 무슨 뜻이었을까? "경제를 포함해 러시아에 심각한 비용·피해를 안길 것"이라는 경고는 뭘 말하는 것이었을까?

푸틴에겐 확신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미룰 수는 있겠지만, 미국의 그 어떤 군사적 방어막도 뚫을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는 NATO 국가들이 전쟁에 휘말리려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1991년까지 소련 통치 하에 있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군사적 반격을 못하리라는 것도.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비용, 인명 손실" 등은 "무겁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이 말에 힘을 얻었을 게 분명하다. 푸틴이 수천 명의 군대를 희생할 용의가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진입할 수 있음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란·북한처럼 푸틴도 경제적 제재를 기꺼이 감수하며 인명 손실 역시 그다지 걱정 안 할지 모른다.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신사적인 말투, 좋은 남자의 매너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매력이 우유부단한 약골이라는 사실을 만회해주지 못한다. 미국의 동맹국들에겐 큰일이다. 우리는 작년 8월 아프가니스탄 미군철수 당시 그의 근본적 약점을 비극적으로 목도했다. 큰 소리 치더니 탈레반의 손에 나라를 넘겨, 수백만 아프간인들을 고통에 빠트렸다.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수년간 그곳에 주둔해온 영국과 상의도 안 한 게 놀랍다. 미국 대통령의 그런 오판·무능은 아시아의 현실을 생각할 때 더욱 암담한 선례로 다가온다.

금후 바이든이 나토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동맹국들(한국·일본·필리핀·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을 배신하게 될지 주목된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이 증가하는데 막아 내겠다는 열의가 안 보인다. 바이든과 그의 측근들이 말로 엄포를 놓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이 절실한 현장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

신뢰할 존재가 아님을 잘 보여줬다. 오커스(AUKUS, 호주 영국 미국) 3자 동맹이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의미가 있을까? 바이든은 총사령관으로서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의 대결에 미군을 파견할 수 있을까? 기자 회견에서 왜 그런 얘기를 쏙 뺐는지 의아해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