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밀사' 성시백, 김구를 평양으로 가게 하다
김일성의 '밀사' 성시백, 김구를 평양으로 가게 하다
  • 유진
  • 승인 2018.01.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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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19일 평양서 개막한 남북 연석회의서 기념사를 하는 김구 선생. 출처=한민족백과사전
1948년 4월 19일 평양서 개막한 남북 연석회의서 기념사를 하는 김구 선생. 출처=한민족백과사전
<8> 성시백의 평양 남북연석회의 성사 공작

북한은 김구ㆍ김규식의 1948년 2월 16일자 편지를 받은 후 답장을 하지 않고 있다가 1개월이 훨씬 지난 3월 25일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를 열고 두 사람이 제기한 남북 정치지도자 협상을 기본적으로 수용하였다.

이 회의에서 북한은 유엔 결정과 남한 단독선거ㆍ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통일적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전조선 정당ㆍ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4월 14일 평양에서 개최하자는 결정을 채택하고 남한의 애국적 제정당ㆍ사회단체에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김구ㆍ김규식이 제의한 남북 정치지도자 협상을 전조선 정당ㆍ사회단체 연석회의로 수정해서 제안한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호소문은 3월 25일 밤 평양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에 기초해 작성된 김일성ㆍ김두봉 공동명의의 서한은 3월 27일 밤에 김구ㆍ김규식에게 전달되었다. 이 김일성ㆍ김두봉의 편지를 김구ㆍ김규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성시백이 개입했다. 말하자면 성시백이 공작차원에서 편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평양 모란봉극장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의 환영식. 출처=한민족백과사전
평양 모란봉극장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의 환영식. 출처=한민족백과사전
남북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38선을 넘는 김구 선생 일행. 오른쪽이 아들 김신, 왼쪽이 비서인 선우진이다. 출처=한민족백과사전
남북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38선을 넘는 김구 선생 일행.
오른쪽이 아들 김신, 왼쪽이 비서인 선우진이다.
출처=한민족백과사전

당시 성시백은 북한에서 연락원을 통해 보내온 김일성ㆍ김두봉의 편지를 소지하고 김구ㆍ김규식을 찾아가 자신이 ‘김일성의 특사’라는 사실을 밝히고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또 성시백은 백남운과 함께 조소앙ㆍ홍명의 등 각 정당ㆍ사회단체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김일성ㆍ김두봉의 편지를 전달할 때도 김일성 특사 직함을 활용했다.

한편 성시백은 백남운ㆍ홍명희ㆍ김원봉 측과 긴밀히 연계하는 동시에 김구ㆍ김규식ㆍ조소앙을 중심으로 한 남북협상세력과 접촉하면서 이들이 북한의 남북연석회의 개최 제의를 받아들이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 3월 29일에는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이, 30일에는 근로인민당과 한독당이 각각 남북연석회의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3월 하순에 발기인대회를 가졌던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가 4월 3일 정식 결성되었는데, 여기에도 성시백이 개입했다. 당시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에는 김구ㆍ김규식ㆍ조소앙ㆍ홍명희ㆍ김봉준ㆍ여운홍ㆍ백남운ㆍ김성숙ㆍ김창숙ㆍ유림 등 남북협상을 지지하는 각 정파의 지도자들이 총망라되어 있었고 수십 개의 군소정당도 참가했다.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는 성시백 묘소.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는 성시백 묘소. 묘비에 남조선혁명가로 쓰여 있다.

주요 정치지도자들이 이 협의회에 참가한 것은 김구의 비서 안우생, 김규식의 비서 권태양, 조소앙의 비서 김흥권, 홍명희의 비서 김규찬과 백남운의 측근인 최백근, 그리고 강병찬 등이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하자면 이들 비서진이 모두 성시백과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활동하던 정치공작원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시백과 그의 조직이 남한의 주요 정치지도자들을 남북연석회의에 모두 참석시켜 남북연석회의가 성공적으로 열리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성시백은 남북연석회의가 열리는 4월 19일~23일까지 평양에 직접 가서 체류하면서 남한에서 올라간 지도자들과 북한 측이 마찰이 없도록 숙소배정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등 남북연석회의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일성이 ‘회고록을 쓸 때 해방 후 남북연석회의 대목에 성시백의 활동내용을 적어 놓으려한다’며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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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2018-01-19 21:53:39
김구 선생의 평양방문도 김일성 공작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