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江)- 6


강에 은현(銀鉉)의
비가 내린다.

빗방울은 물에 번지면서
발레리나가 무대 인사를 하듯
다시 튀어 올라 광채를 짓고

저 큰 흐름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강은 이제 박수소리를 낸다.


구상(1919~2004)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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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시 ‘강(江)’은 구상 시인의 평생 역작이다. 비 내리는 강을 관조하는 시인의 생전 모습이 잡힌다. 짧은 시어 속에 미시(微視)와 거시(巨視)의 강이 오롯이 담겨 있다. 회화나 사진으로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언어예술의 참맛이 여기에 있다.

‘은현(銀鉉)의 비’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은현이라는 단어도 없다. 은색 현 같은 비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은현의 비는 세우(細雨)로, 맑은 날 내리는 비다. 안개 입자보다 굵고 빗방울보다 작은 물방울들이 낮은 현악기 소리를 내며 강물에 떨어지고 있다. 호수처럼 너른 강은 멈춘 듯 흘러간다. 맑은 날의 비는 다른 말로 여우비다.

강에 떨어진 ‘빗방울은 물에 번지면서 발레리나가 무대 인사를 하듯 다시 튀어 올라 광채를 짓는다’. 강물에 튀어 오르는 빗방울은 짧은 순간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거기서 시인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발레리나의 탄력적 몸짓을 연상한다. 발끝으로 서서 관객을 향해 팔을 벌리며 허리를 굽히는 발레리나. 뒤이어 빗방울은 강물이라는 무대 위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친다.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무대공연은 끝난다. ‘은현의 비’도 그친다. 객석에서 한 두 사람씩 박수를 치더니 곧이어 관객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강의 객석에서도 우레 같은 박수소리처럼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진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는 막을 내리고, 빗방울은 ‘저 큰 흐름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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