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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중국어(한문)에서 ‘自然’은 ‘스스로(自) 그러하다(然)’, 즉 서술문이다. ‘자연스런’ ‘자연히’ 같은 수식어(형용사·부사)로도 쓰였다. 명사 ‘nature’의 번역어로 자리잡은 것은 19세기말 이후 일본에서였다. ‘자유自由’도 프리덤freedom의 번역어가 되기 전까진 ‘스스로(自) 말미암다(由)’라는 문장이거나, 부사 ‘제멋대로’로 쓰인 것과 같은 사례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일본이 서구 문물을 번역하며, 한자를 조합한 무수한 신조어가 생겨났다. 훗날 우리말에 유입된 ‘한자어’들이다. 그 외의 유형이 ‘自然’처럼 고전 어휘를 재활용하는 경우다. ‘노자’에 등장하고 불교 용어로도 쓰인 게 ‘自然’이다.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가 오랜 세월 익숙한 의미였다.

그러나 현대어 ‘自然’은 ‘自然과학의 탐구 대상’인 ‘nature’의 번역어다. 백 수십년전 일본인들은 두 가지를 혼동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최고의 문학·예술은 ‘自然 그대로 自然을 묘사할 수 있다’고 하자, ‘自然 그대로의 自然’이란 미(美)가 아니라는 반론이 나온다. ‘있는 그대로의 自然’과 ‘自然과학의 自然’을 혼동한 것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自然’이란, 삼라만상 즉 ‘自然과학’ 탐구 대상으로서의 ‘自然’이다. ‘自然’에 포함된 ‘거칠고 때묻은’ 요소를 심미적으로 손질해야 문학·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근대적 발상이다.

네덜란드가 쇄국시대 일본의 서양문물 창구였던 시절, 네덜란드어 사전의 ‘natuurlijk(自然)’ 항에 ‘몹시 때가 묻은’이라는 일본어 번역이 나온다. 명사형 Natuur엔 ‘우주만물’ ‘조물주’ 등의 번역이 있을 뿐이다. ‘自然’을 명사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유행한 일영사전의 ‘tennen天然(천연)’란엔 ‘natural(자연의·자연스런)’이라 돼 있고 유사어로 ‘shizen自然’이 실렸으나, 여전히 명사는 아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유행가 가사처럼, 인류가 ‘自然’ 속에 있을 땐 ‘自然’을 ‘대상=명사’로 인식할 수 없다. 삼라만상(自然)이 탐구·개발의 대상으로 변하고, 천부인권의 기반을 말하는 ‘자연법自然法’이 어휘로 통용되고 나서야 ‘自然’은 비로소 ‘nature’의 번역어로 정착하며 완전히 명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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