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는 ‘홍두사미’, ‘홍백기’, 그리고 ‘홍패싱’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무리한 정책 추진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결국은 수용하거나 백기를 들면서 붙은 것이 홍두사미와 홍백기다. 홍패싱은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에서 무시당해 나온 것이다.

1980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단임제가 시행된 이후 재임 3년을 꽉 채운 경제부총리는 없었다. 윤증현 전 부총리가 세운 최장 기록이 842일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임기까지 함께 하는 ‘순장조’로 홍 부총리가 재임 기간을 이어간다면 1200일도 너끈하다.

하지만 경제 사령탑으로서 재정과 예산을 쥐고 있지만 무게감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집권세력이 재정 확대 정책 추진에 저항하지 못할 인물로 홍 부총리를 골라 앉혔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홍 부총리는 2020년 제1차 재난지원금 논의 당시 소득 상위 30%를 뺀 나머지 70%에게만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4.15 총선이라는 ‘발등의 불’을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은 100% 지급을 밀어붙였고, 실제 전 가구에 40만~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이 지급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5번째, 지난해 2번째인 재난지원금을 두고 똑같은 논란이 벌어졌다. 홍 부총리는 논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 국민 지급 반대를 외친 것이다. 결국 소득 하위 88%까지만 지급하게 됐지만 ‘무늬만 선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체 재정으로 소득 상위 12%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다분히 대선을 의식한 현금 살포다.

홍 부총리가 소극적이나마 ‘저항’에 나선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 때문이다. 올해 본예산 기준 국가채무는 1064조4000억원으로 처음 1000조원을 넘어선다. 여기에 올해 1차 추경 편성을 위해 발행할 10조원 이상의 적자국채를 고려하면 올해 국가채무는 최소 1074조4000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를 지난해 주민등록인구로 나누면 올해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2081만원에 달한다. 나라 곳간의 열쇠를 쥔 수장으로써 나랏빚을 늘린 주범이란 ‘꼬리표’는 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홍 부총리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속적인 비난을 퍼붇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따뜻한 안방에서 지내다 보면 북풍 한설이 부는 들판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홍 부총리가 만행에 가까운 예산을 편성했다"고 공격했다. 이 같은 비난은 급기야 재정기획부에서 예산과 기획 기능을 떼어내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처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으로 이어졌다.

이는 기획재정부를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로 인식하는 것은 물론 포퓰리즘 경제 공약을 밀어붙이기 위한 밑밥깔기라고 할 수 있다. 임기 내 5대 경제강국(G5) 진입,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코스피 5000 시대 등 이른바 ‘5·5·5’ 공약이 바로 그것이다. 황당하지만 흉내라도 내려면 0%대까지 곤두박질칠지 모를 잠재성장률 추세를 뒤집을 획기적 전략이 필수다. 그런데 실행 전략이라고 내놓은 것이 고작 큰 정부에 국가 주도 투자다.

재정을 마구잡이로 풀어 나랏빚만 늘린 채 민간활력 저하, 일자리 참사를 초래한 것이 지난 5년이다. 이미 실패한 재정 투입 모델을 다시 꺼내든 것도 모자라 예산마저 마음대로 쓰겠다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 독재정(獨裁政)을 넘어 제2의 베네수엘라가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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