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같은 도시에서 두 번째 열린 올림픽. 지난 4일 밤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화려한 눈꽃 LED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회식을 연출한 장이머우(張藝謀)는 14년 뒤 똑같은 공간인 냐오차오(鳥巢·새 둥지)에서 또 한번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구촌이 함께 어우러진 가슴 설레는 축제가 되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외국 정상, 왕실 구성원 등은 고작 32명. 이름을 알 만한 유명인사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알사니 카타르 국왕 등에 불과했다. 이 때문인지 한국의 박병석 국회의장·황희 문체부장관의 참석이 오히려 시진핑의 체면을 살려준 듯했다. 2008년 하계올림픽 개막식에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를 비롯해 88개국 111명이 참석했다. 이날 32명보다 세 배가 많았다.

이날 개막식 초반에 시진핑이 등장한 것도 올림픽 식전 행사 관례에 맞지 않았다. 개최국 정상은 행사 중간에 환영연설을 하거나 짤막한 개회선언만 하는 것이 관례다. 시진핑은 초반에 등장하여 무려 1분간 박수를 받았다. 식전 행사에 출연한 어린이들은 두 팔을 높이 들어 응원솔을 흔들었다. 중국식 전체주의가 올림픽 정신을 무색게 한 장면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독일·일본·캐나다·호주 등은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선수들만 참가하는 외교적 보이콧을 단행했다.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자행되는 중국의 참혹한 인권탄압 때문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위구르족 인권침해를 제노사이드(인종 학살)로 보고 있다. 지난 3일 스위스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 앞에서 티베트 출신 인권활동가들이 "인권 없이 올림픽 없다"며 베이징올림픽 반대 시위를 벌였다. 때마침 지난 2일에는 쇠사슬 목줄에 묶여 사는 중국 장애여성의 동영상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퍼져나갔다.

장이머우 감독의 화려하고 기묘한 테크닉은 여전히 인상적이었지만, 베이징 냐오차오 경기장은 디지털 전체주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인권이 빠진 ‘반쪽 올림픽’의 슬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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