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그룹 연말 인사 키워드는

국내 그룹사들이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든 글로벌 경영환경에 맞서 변화와 혁신을 위한 인사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인사는 기업의 미래를 가늠할 시금석이 된다. 누가 수장이 되는지에 따라 기업의 방향성과 지향점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그룹, LG그룹, SK그룹, 롯데그룹 등 그룹사의 경우 인사의 파급력이 해당 그룹을 넘어 국가와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연말 정기인사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 각 그룹은 파격에 가까운 혁신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과 미·중 무역전쟁, 글로벌 공급망 차질, 디지털 전환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탓이다. 변화와 혁신 없이는 현재의 난맥상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LG그룹, 세대교체로 혁신 감수성 제고 = 5대 그룹 연말 인사의 신호탄은 LG그룹이 쏘아올렸다. LG그룹은 지난달 25일 구광모 회장 취임 후 최대 규모인 179명의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이중 132명이 신규 상무 임원이며, 상무 승진자의 62%인 82명이 40대다. 능력과 전문성, 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갖춘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해 도전적으로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룹 운영의 사령탑은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도 리더십을 보여준 LG전자 CEO 권봉석 사장이 맡았다. 부회장으로 승진해 LG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되며 LG호의 방향타를 잡게 됐다. 대신 LG전자의 CEO는 조주완 최고전략책임자(CSO)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선임함으로써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라는 중임을 맡겼다. 이외의 주요 계열사 CEO는 유임시켜 혁신과 안정을 모두 취했다는 평가다.

◆롯데그룹, 순혈주의는 끝났다 = LG그룹과 같은 날 이뤄진 롯데그룹 인사는 파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글로벌 유통 전문가인 김상현 전 DFI 리테일그룹 대표가 유통군 총괄대표, 신사업 전문가인 안세진 전 놀부 대표가 호텔군 총괄대표로 선임된 것. 이는 롯데그룹이 CEO에 외부 인사를 수혈한 첫 사례로 ‘순혈주의’를 쇄신해 경영을 혁신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 관계자도 "신 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초핵심 인재 확보를 주문하는 동시에 어떤 인재든 포용할 수 있는 개방성과 인재들이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을 갖춘 조직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롯데그룹은 변화와 혁신성 증대를 모토로 기존 비즈니스 유닛(BU) 체제를 헤드쿼터(HQ) 체제로 개편하고, 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 등 6개 사업군으로 계열사를 유형화했다.

◆삼성그룹, 40대 CEO 탄생할까 = 이달 초 인사를 앞둔 삼성그룹은 지난달 29일 삼성전자가 혁신적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그룹을 아우르는 인적 혁신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복심을 내비쳤다.

타 계열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한 이번 개편안의 방점은 연공서열 타파를 통한 ‘인재 제일’ 원칙의 강화에 찍혔다. 부사장과 전무 직급의 부사장 통합, 임원 직급단계 축소,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의 성과관리체제 전환 등이 핵심 골자다. 능력만 있다면 나이와 연차를 불문하고 중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30대 임원은 물론 40대 CEO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연공서열식 조직문화로는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 혁신을 통한 선도적 역량 발휘가 어렵다는 판단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SK그룹·현대차그룹, 핀셋인사로 안정 속 혁신 = SK그룹과 현대차그룹 역시 각각 이달 초와 중순께 정기인사를 단행할 전망이다. 양사는 기존 경영진에 대한 최태원 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소폭의 ‘핀셋인사’를 통해 안정에 혁신을 더하는 형태의 체질 개선이 예상된다. 다만 경영상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중폭 이상의 신진인사 등용과 세대교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SK그룹의 경우 지난달 취업 제한이 해제된 최태원 회장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경영복귀 역시 관전 포인트다. 그룹 내외에서는 SK이노베이션, SK온, SK E&S가 유력한 복귀처로 오르내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아프리카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점진적 경영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이 끼얹어졌다"면서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을 뚫어내기 위한 그룹사들의 파격적 인사 혁신 행보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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