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瀑布)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1921~1968)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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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를 겪은 김수영 시인은 1960년대 주류를 이루던 서정시를 배격하고 참여시의 기치를 들었다. 당대의 사회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변혁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원래 모더니즘 계통의 시를 썼다. 도시 문명의 비판과 전통적 시 형식에 대한 실험정신이 강했다. 그러다가 정권이 부패하자 이를 비판하며 현실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폭포’는 정의를 위해 온몸을 던진 사람의 상징이다. 수직절벽을 떨어지는 물줄기는 높아서 아찔하다. 높은 이상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일지라도 결정적 순간은 두렵다.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폭포는 그런 기색조차 없다. 일말의 타협이나 망설도 없고 떨어진 물줄기는 산산조각 부서진다. 고통과 희생 그리고 죽음이 있을 뿐이다. 폭포는 마침내 ‘고매한 정신’이 된다.

단순하면서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는 뭐라 ‘규정할 수 없고’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떨어진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떨어지다 보면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온다. 희망도 안온한 삶도 없는 밤이 되면 폭포는 더욱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폭포는 이제 정의추구 같은 가치지향 단계를 지나 그 폭포 그 자체가 된다. 기실, 가치지향은 불안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적 가치이며, 정의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정의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폭포의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르고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는다. 또 그것은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다시 말해 나태함과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놓고 ‘높이도 폭도 없이’ 폭포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쉼 없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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