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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중국어의 ‘文明’은 영어‘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의 번역어다. 일본어 ‘bunmei文明’를 경유해 들어왔다. 19세기 후반 이래 일본에서 생성된 수많은 번역어는 대부분 영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당시 최강의 패권이자 문명국이 대영제국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서구 언어들처럼 영어 역시 고급 어휘일수록 그리스어·라틴어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라틴어 civis(시민) civilis(시민의) civitas(도시) 등에서 ‘文明’을 의미하는 비슷비슷한 철자의 영어 불어 독어 단어들이 생겨났다. 주목할 점은 어원에 담긴 ‘도시(city)’적 요소다. 상·하수도 구분 등 위생·생활편의·질서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도시’였다. 예를 들어 인체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 가능한 재래형 ‘뒷간’이 농경문화의 일부라면 ‘수세식 화장실’은 ‘文明’의 이기(利器)에 속한다.

고전중국어에서 ‘文明’이 처음 등장한 것은 수 천년 전 기록, 흔히 ‘주역’이라 부르는 <역(易)>이다. 글자 그대로 ‘文’이 ‘明’한 상태, 즉 문인의 가르침과 치세가 발달한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文’이란 그 기원(갑골문)이 원래 ‘신탁(神託, oracle)’이었다는 사실에서 보듯, 우주의 절대적 존재와 인류 사이의 소통 수단이었다. 대략 3000년전 주나라때부터는 ‘文’이 세상을 다스리는 도구로 본격 발전한다. 좀 나중에 나온 단어 ‘文化’는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준말로서, 2000여년전 한나라 문헌에 나온다. ‘형벌이나 위력을 가하지 않고, 가르쳐 이끌다’는 뜻이다.

생명체의 다양한 존재방식이 저마다의 ‘文化’라면, 그게 통합적으로 구성·체계화된 상태가 ‘文明’인 셈이다. ‘文明’의 반대말은 ‘야만’이지만 ‘文化’엔 ‘야만’의 개념이 없다. 아프리카 오지나 아마존 밀림 속에서 나름의 ‘文化’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나, 이를 ‘文明’이라 칭하진 않는다. 한편 라티어 쿨투라(cultura, 경작·육성)에서 유래한 어휘가 culture(영) culture(불) Kultur(독) 등이다. 가꿔진 예술·지식을 말한다. 19세기 후반 서구에선 정신적 소산=culture, 물질적 소산=civilization 식의 구분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현대 중국어 ‘wenhua文化’가 명사일 뿐인 반면, ‘wenming文明’은 명사이자 형용사(현대적인·신식의·교양 있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현지 방송·현수막·포스터 같은 대국민 계도·홍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어휘가 ‘文明’이었다. ‘文明 시민’의 덕목으론 ‘줄 서기’ ‘웃통 벗고 다니지 않기’ ‘잠옷바람으로 나다니지 않기’ 등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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