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공정자산 규모에서 현대차그룹을 앞질러 역대 처음으로 재계 서열 2위 자리를 꿰어찼다. /SK그룹
SK그룹이 공정자산 규모에서 현대차그룹을 앞질러 역대 처음으로 재계 서열 2위 자리를 꿰어찼다. /SK그룹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과 함께 LG그룹에게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내줬던 SK그룹이 역대 처음으로 재계 서열 2위에 오르며 구겨진 자존심을 단번에 회복했다. 최근 수년간 실적 개선을 거듭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16년 동안 움켜쥐고 있던 타이틀을 빼앗은 것이다. 올해도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주요 계열사들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재계 서열 2위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다.

9일 기업 데이터 연구기관 CEO스코어는 국내 대기업집단의 공정자산 분석을 통해 지난해 3분기 기준 SK그룹이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에 올라섰다고 밝혔다. 1위는 삼성그룹, 4위와 5위는 각각 LG그룹, 롯데그룹이 지난해와 순위 변동 없이 이름을 올렸다.

공정자산은 그룹을 구성하는 일반 계열사의 자산총액과 금융 계열사의 자본총액을 합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공시대상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그해 3월까지의 공정자산을 산출·발표한다. 이것이 ‘5대 재벌’, ‘10대 그룹’ 같은 재계 서열의 기준이 된다.

SK그룹의 공정자산은 지난해 3분기 현재 270조747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239조5300억원보다 31조2170억원(13%) 늘어난 수치다. 인텔의 낸드 사업을 인수한 SK하이닉스의 자금조달과 실적 성장에 따른 대폭적 잉여금 증가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SK하이닉스의 공정자산은 전년 64조710억원에서 75조4039억원으로 11조3329억원(17.7%) 늘었다. 공시대상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 중 삼성전자(11조200억원)를 뛰어넘는 최대 증가액이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공정자산은 전년 250조140억원에서 3조9300억원(1.6%) 증가한 246조840억원에 그쳐 20조7330억원 차이로 SK그룹에게 추월을 허용했다. 아울러 부동의 1위 삼성그룹은 전년보다 10조6870억원(2.3%) 늘어난 467조9920억원으로 SK그룹을 200조원 가까이 따돌리며 권좌를 굳건히 했다.

LG그룹과 롯데그룹은 각각 전년 대비 2조7230억원(1.8%), 5조1400억원(4.4%) 늘어난 154조450억원, 122조9210억원으로 빅5를 완성했다. 2개월 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식발표가 있겠지만 지난해 4분기 이후 현재까지 SK그룹의 공정자산을 갉아먹을 큰 변수가 없었던 만큼 재계 서열 2위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촉발돼 2000년대초까지 이어진 재계 격변의 세월을 거쳐 고착화된 5대 그룹의 서열이 바뀐 것은 2006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국내 재계 서열은 현대그룹-삼성그룹-LG그룹-SK그룹 순의 4강 체제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이른바 ‘왕자의 난’에 이은 경영권 갈등 속에 2000년 9월 현대자동차가 친족 분리되면서 급격히 서열 밖으로 사라졌다. 또 2005년 LG그룹을 구성하던 구씨와 허씨 일가가 LG, GS로 각자도생에 나서며 2006년부터 삼성그룹-현대차그룹-SK그룹-LG그룹-롯데그룹 순의 구도가 이어져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SK그룹이 재계 서열 2위에 오른 것은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공정자산 증대는 그룹의 재무 건전성과 투자·연구개발 역량, 즉 지속 가능한 성장성을 가늠할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대표기업이라는 상징성과 맞물려 그룹의 행보가 국가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삼성그룹의 결정과 발언 하나하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이 무게감을 갖는 이유다.

재계는 올해도 SK그룹의 약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핵심 계열사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SK하이닉스), 이동통신(SK텔레콤), 배터리(SK온)의 시장 전망이 모두 밝기 때문이다. SK그룹의 재계 서열 2위 도약이 갑자기 이뤄진 깜짝 반등이 아닌 수년간 쌓아온 굳건한 토대 위에서 구현됐다는 점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2017년 4월 기준 현대차그룹과의 공정자산 격차는 47조8000억원에 달했지만 매년 격차를 좁혀 지난해 4월에는 6조6000억원까지 따라붙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SK그룹의 계열사가 2019년 111개에서 현재 176개로 늘어나는 동안 현대차그룹은 53개에서 57개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SK그룹이 보여주는 꾸준한 성장의 근저에는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 인수로 다져진 성공적 인수합병(M&A)의 DNA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자산 기준 재계 서열. /CEO스코어
공정자산 기준 재계 서열. /CEO스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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