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또 하나의 세계표준: 한국형 경영
[시론]또 하나의 세계표준: 한국형 경영
  • 최성재
  • 승인 20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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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총수가 큰 것만 다루고 나머지는 전문 경영자에게 일임하면, 안정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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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다른 기업지배구조]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다. 몇 년 전에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를 아예 주주의 힘으로 개선하겠다며 기세등등 장하성 펀드가 떴다. 외국계 자본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져 금감위의 명령에 따라 이름을 바꿨지만, 주식시장과 진보 마당패으로부터 한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흐름으로,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가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벽을 마련하겠다고 하여 재계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 기업 특히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불만은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된 해묵은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모델은 이율배반적이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미국형인데, 속으로 지향하는 바는 사회주의다.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척 사실은 정치하고 있다는 말이다.

먼저 세계적으로 기업지배구조에는 어떤 유형이 있으며, 한국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것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라마다 다르다. 정답이 없다. 따라서 큰 틀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진 대로 유지하되 부단히 개선하는 게 제일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세 나라, 미국과 일본과 독일은 기업지배구조도 다른 나라들의 모델이다.

이들 세 나라의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기본적으로 존중하되, 그들보다 앞섰던 또는 앞선 나라라고 하여 일방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경제와 문화, 역사, 정치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스스로 새 모델을 창조했기 때문에 1970년대부터 한 세대 이상 세계의 3대 경제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들 다음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천만뜻밖으로 독창적인 모델을 창조하여 단숨에 세계 10대 경제강국을 넘보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주주 이익의 극대화]

미국이 현재의 기업지배구조를 갖게 된 것은 대략 1970년대 무렵이다. 일본과 독일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이전까지 생산하면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서나 프리미엄이 붙어 날개 돋친 듯 팔리던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가 심각한 도전을 받게 이르렀다.

문어발 확장이 이때부터 업종 전문화로 대대적으로 개편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최고로 우선하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십시일반 일반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연금 펀드 등이 이미 어떤 대기업의 대주주도 압도하게 되면서,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경제황제는 아득한 전설이 되었다.

개미 주주가 힘을 모아 실적이 시원찮은 최고경영자는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가 있었다. 아이아코카와 웰치가 이런 시장에 잘 부응하여 스포츠나 연예계의 스타 이상의 연봉을 받으며 슈퍼스타로 떠오르게 된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다. 개인이나 가족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지나갔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월마트가 새롭게 떠오른 가족재벌이었지만, 그들도 철저히 시장을 존중했다. 주주 우선의 경영을 한 것이다. 차고에서 창업하여 최단기간에 세계최고 부자로 떠오른 빌 게이츠는 주식의 약 4분의 1을 지닌 최대단일주주이자 최고경영자로 예외적 인물이지만, 그 역시 주주 가치를 최우선했다는 점에서 미국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일찌감치 퇴임을 선언하고 아내 이름을 따서 멜린다 재단을 설립한다 하여, 그는 세상을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미국의 기업지배구조도 심각한 약점이 있다. 그것은 눈앞의 이익에 혈안이 된 변덕스러운 주주 때문에 최고경영자가 장기계획을 세우기 힘들다는 것이다. 임기 중 왕창 벌어먹고 나가면 그만이니까! 분식회계와 신용등급 과대평가의 유혹도 끊임없이 받는다. 엔론 산사태와 서브프라임 폭풍이 미국 주식시장을 약 10년 주기로 강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약점 때문이다.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회사를 위한 회사]

일본은 맥아더 신(god)에 의해 태평양전쟁의 전범으로 낙인찍힌 재벌이 해체되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소유주만 물러났을 뿐, 기업지배구조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일본 기업구조의 특징은 '회사를 위한 회사' 기업구조다.

최고경영자에서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회사의 부속품이다. 회사에 큰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개인은 유한하고 회사는 영원하다!'고 크게 외친 후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어 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 일본의 대기업은 거대한 왕국이다. 100년, 200년 지나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주의의 왕국이다. 쇼군(장군)과 다이묘(영주)와 사무라이(무사)와 상인과 농민의 구조는 일본의 게이레츠(재벌)에 그대로 유지된다.

당연히 직원은 평생토록 한솥밥을 먹는 게 원칙이다. 영주와 무사에 해당하는 것이 크고 작은 계열사다. 이들의 관계는 깊은 신뢰와 적절한 이윤 보장으로 묶여 있다. 외국의 기업이 이들 사이로 끼어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 회관. 연합뉴스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 회관. 연합뉴스

일본의 대기업은 주식의 약 30%는 시장에 아예 내놓지 않는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일본의 대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일본 기업의 최대 장점은 장기계획이다. 30년 계획은 기본이다. 1년 계획이 기본인 미국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학자라기보다 일개 과학실험 조교인 전중경일(田中耕一 다나카 고이치)이 2002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았는데, 이것은 일본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연구개발의 천국이 일본이다. 모방의 천재, 창조의 바보라며 일본을 깔보는 사람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세계 특허시장에서 세계 1위, 2위를 다투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에서 은행을 담당하는 것은 옛날로 말하면 상인인데, 상인은 어디까지나 장군 아래 있다. 다시 말해서 은행은 장군(최고경영자)의 경리 담당자로서 제조업에 최대한 싸게 때로는 제로 금리로 돈을 융통해 주는 데 있다. 자연히 은행은 자기 계열사에만 융자해 주는 게 원칙이다. 제조업과 은행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제조업이 금융을 확실하게 지배한다.

일본 대기업의 약점은 행동이 굼뜬 데 있다. 빠른 시장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일본이 고전하는 데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천리 길에서 한 걸음 내디딘 정도다. 금융은 제조업의 시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본은 금융이 발전하기도 힘들다.

 

[독일의 기업지배구조: 이해당사자간의 이익 배분]

독일은 미국과 달리 주주(shareholder) 우선이 아니라 이해당사자(stakeholder) 우선이다. 여기서 이해당사자란 크게 셋으로 나눠지는데, 그것은 은행과 회사와 노조다. 각각 3분의 1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중에서 제일 센 측은 은행이다. 은행은 여러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독일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초인플레이션으로 워낙 크게 데어서 기본적으로 금융시장,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주식시장을 불신한다.

간접금융이 원칙이고 직접금융은 보조수단이다. 통화량도 엄격히 통제하고 주식시장에 주식도 많이 풀지 않는다. 아예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우량기업도 많고 상장하더라도 거의 100% 주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회사도 드물지 않다.

자연히 경제규모에 비해 독일의 주식시장은 크지 않다. 대신 주식의 급등이나 폭락으로 '축배의 노래'를 부르는 일도 없고 '노예의 합창'을 웅얼거리는 일도 없다.

독일 기업의 장점은 제조업이다. 은행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고 감시하기 때문에 독일의 제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몇 년 전부터 미국 인구의 3분의 1도 안 되는 독일이 미국을 제치고 수출 세계1위로 등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일 기업의 단점은 노조다. 독일의 기업지배구조는 안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노조에게도 3분의 1의 주식을 배분했는데, 이들이 기득권이 되어 '가늘고 길게' 살기를 원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독일 메르켈 총리. 연합뉴스
철혈 재상으로 불리는 독일 메르켈 총리. 연합뉴스

최근에 여자 철혈 재상 메르켈이 개혁의 칼을 뽑아 피를 뚝뚝 흘리며 기업인에게 힘을 보태 주고 노조에 생채기를 내면서 약간의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근본적인 것은 손도 못 대고 있어서 성과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독일 기업의 또 다른 단점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개발하는 데 약한 것이다. 안정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다 보니까 그렇다. 90년대부터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IT 산업에서 독일이 상대적으로 뒤쳐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이율배반적인 안정성과 역동성이 동시에 존재]

한국 기업은 총수의 힘이 세다. 이것이 만인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다. 심지어 외환위기 때는 미국의 대리인 IMF도 미국 기준이 곧 세계 기준(global standard)이라며 걸고 넘어졌다. 이에 김대중 정부와 한국의 언론과 학계와 시민단체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 바람에 남 좋은 일 참 많이도 했다. 지도자는 무식한 것 자체가 매국이다.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할 때 다들 미쳤다고 난리였다. 적자 또 적자, 투자 또 투자, 적자 또 적자, 투자 또 투자! 그러다가 어느 날 엄청난 흑자, 10년 적자를 한꺼번에 만회하는 대박!

박정희가 박태준에게 '아무도 뜯어가지 못함'이란 종이 한 장을 달랑 쥐어 주며 포항의 바닷물에 빠져 죽든지 철강왕 박 카네기로 등극하든지 양자택일하라며, 대일 청구금을 뚝 떼어 주었을 때, 미국도 말리고 독일도 말리고 일본도 말리고 IBRD도 말렸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그들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제4회 박태준미래전략연구포럼. 연합뉴스
제4회 박태준미래전략연구포럼. 연합뉴스

그러나! 박태준은 해냈다. 세계 1위, 2위를 다투는 포항종합제철(POSCO)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정주영의 자동차와 조선은 어떠하며 김우중의 조선은 어떠하며 조중훈의 항공은 어떠하며 이건희의 LCD와 휴대전화는 또 어떠한가. 영원히 못 오를 나무에 원숭이보다 빨리 올라가서 신나게 태극기를 흔들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떻게 된 셈인지 칭찬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비판은 얼마나 잘하는지 초등학생도 한국 재벌(대기업이란 말은 거의 안 씀)은 정경유착의 산물이요, 노동자의 피땀으로 일군 것이라고 정답을 턱 내놓는다. 더하여 이젠 바꿔야 한다고, 국민과 노동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근엄한 명의처럼 처방전까지 척 갈겨쓴다.

세계는 넓고 나라는 많다. 어떻게 한국 외에는 이런 나라가 하나도 없을까. 최근에 한국의 대기업이 동네북이 된 사이 왜 한국을 흉내 낸 중국과 대만이 휘파람을 불며 무섭게 따라오거나 추월해 버렸을까. 정경유착은 카더라 방송의 주제곡일 뿐 한국이 100개 이상의 후진국 어디보다 심했다는 증거가 없다.

다른 후진국들은 많은 경우에 외국의 공짜 자본을 들여와 권력자끼리 나눠 먹고 가짜 다리를 놓고 가짜 공장을 세웠다. 한국은 아니었다. 경제개발 시작 후 공짜로 받은 돈은 일본이 준 3억 달러 외에는 거의 없다. 신용이 너무 없어서 어떤 나라도 빌려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박정희는 한국은행 곧 국가를 보증으로 내세워 달러를 들여왔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온 외국자본은 최소한 10배, 웬만하면 100배 이상으로 키워 외채의 원금과 이자를 몽땅 갚았다. 국가자본이 급격히 커졌다. 어지간하면 자본을 국내에서 스스로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덩치가 커진 대기업이 과실을 몽땅 차지했다고? 천만에! 대부분 국민한테 돌아갔다. 중산층이 가파르게 증가한 것이 그것을 대변한다. 얼마 전에 한국의 교사가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보수를 받는다고 했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한국의 모든 임금 근로자가 그렇기 때문이다.

교사는 공사립을 막론하고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99% 사실상 공무원이다. 다시 말해서 공무원에 준한 월급을 받는다. 일반 공무원보다 많이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모두 국민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런 공무원도 대기업에 비하면 상대적 박탈감에 배가 아프다.

한국의 대기업 노동자 임금은 한국보다 두세 배 잘사는 일본 대기업을 능가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무슨 말인가. 한국은 성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가장 많이 되돌려 준다는 의미다.

이것은 객관적인 자료가 말한다. UN에서 밝혔다. 성장이 빈곤을 얼마나 줄이느냐, 이에 대한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03년 한국의 빈곤 감소적 성장 지수는 2.13이었다. 1이상이면 빈곤층이 성장으로 부유층보다 이익을 더 많이 본 것이라고 한다.

인도 0.56, 방글라데시 0.39, 중국 0.28, 네팔 0.24, 라오스 0.21, 베트남 0.15, 태국 0.13, 인도네시아 0.10--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2등과 현저한 차이로 단연 1등이었다.

90년대부터 한국의 소득분배가 악화되기 시작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돌아갔다.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좋다는 것이다. 당연히 대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좋다는 결론도 나온다.

사람들은 모순된 말을 하면서도 모순인 줄 모르는 수가 많다. 한국의 대기업에 대해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1%의 지분으로 황제 경영을 한다!“

대기업의 최대 주주가 주식을 1%밖에 안 갖고 있다면, 나머지 99%는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그런 주식만 갖고 세계와 경쟁하여 승승장구한다면, 그는 세계적인 경영자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압력 아닌 압력을 넣어야 할 것이다.

박정희는 한국의 기업이 어느 정도 커지자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되면, 그것은 이미 개인 것이 될 수가 없다. 절로 국민주가 된다. 박정희는 일본이나 독일처럼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지도 않았다.

나라에 따라서는 황금주가 있어서 차별의결권을 부여해 주어, 최고경영자가 경영권에 도전을 받지 않고 안심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국제경쟁력을 꾸준히 키울 수 있게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오히려 미국의 제도가 최고인 양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고 대통령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압력을 가한다.

심심하면, 걸핏하면 대기업 총수를 대상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어려움을 알고 대주주에게 유리한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도 많은 장점이 있다. 또 다른 세계 표준이다. 90년대 무렵부터 서서히 정착되고 있다.

첫째 기업총수는 전과는 달리 큰 것만 다룬다. 박정희가 하던 식이다.

"여보게, 제철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임자, 조선업 한 번 해 봐. 자본은 가능한 한 대 줄게. 이번에는 자본을 조금밖에 주선해 줄 수 없네. 미안하이.

나머지는 알아서 해. 이번에는 자본을 하나도 대 줄 수 없어. 스스로 구해. 뭐, 못한다고? 그럼, 다시는 안 볼 거야. 자, 담배 한 대 피우지. 임자는 능히 할 수 있어!"

오늘날 한국의 세계적인 대기업 총수는 일반의 오해와는 달리 중간에 점검하고 칭찬하고 도와 줄 일이 있으면 도와 줄 뿐, 경영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기업총수는 이건희다. 이건희는 빌 게이츠나 잭 웰치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단기적으로 아무리 손해나도 계속 용기를 북돋워 준다. 최고경영자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만 해결해 준다.

둘째 의사결정이 빠르다. 한국의 대기업 총수는 단독으로 또는 이사회의 회의를 거쳐서 미래 성장동력을 하나 발견하면 모든 위험 부담은 스스로 지고 바로 시작한다.

이보다 빠를 수 없다. 전광석화!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LCD, 휴대전화 등은 모두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일본이 제일 부러워하는 한국의 역동성이다.

셋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간다. 한국의 대기업은 그 성과가 주식시장을 통해서 주주에게 제일 먼저 돌아가고 그 다음으로 이미 말했듯이 대기업 종사자와 협력회사인 중소기업에게 널리 돌아간다. 매출액이 아니라 부가가치로 따지면, 한국의 30대 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85%는 중소기업을 통해 그들에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90년대 이후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상대적으로 점점 적어졌는데, 그것은 대기업의 강성노조 때문이다. 과실을 자신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이 크게 벌어졌다.

대기업의 강성노조는 정부만이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데, 지난 15년간 정부는 이들에게 도리어 아첨하고 비굴하게 표를 구걸했다. 그리고는 대기업 총수 때려잡는 데에 도깨비춤을 추었다.

한국의 대기업도 단점이 없을 수 없다. 대기업 총수가 비전을 제시하며 소신을 펼치는 게 아니라 신기루를 가리키며 똥고집을 피울 경우다. 그러면 쫄딱 망한다. 수많은 대기업이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은 주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젠 대기업에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세계화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벤처기업 중에 이런 기업이 많다. 주식시장에 상장해서 대박을 터뜨리면 그 다음에는 정신이 없다. 외제차 굴리며 이것저것 마구 벌려서 제2의 정주영이나 이병철, 김우중을 흉내 내다가 쪽박 차는 수가 많다. 잘했다. 그렇게 당해 봐야 다음 주자들이 보고 배운다.

한국 기업은 안정된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도 큰 짐이다. 상호출자, 차명계좌, 편법상속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대단히 어렵다. 한국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이번에 법을 제대로 정비해 주기 바란다.

한국의 고유한 장점을 몽땅 없애고 겉으로 미국을 흉내 내면서 실지로는 사회주의 국가처럼 모조리 공기업을 만들어 버리면, 제2의 기아나 제2의 제일은행, 제2의 상업은행, 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의 여러 부실부패(不實腐敗) 공기업처럼 된다. 그러다가 몽땅 외국에 헐값으로 넘어간다.

(2008. 4. 14.) (2018. 2. 2.)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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