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 파업이라는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지난 4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임금교섭 노동쟁의 조정신청서’ 전달을 위해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
삼성전자가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 파업이라는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지난 4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임금교섭 노동쟁의 조정신청서’ 전달을 위해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상 최대 매출과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등극이라는 경영성과를 창출했던 삼성전자가 ‘노조’라는 암초에 걸려 성장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조가 올해 임금협상을 놓고 무리한 요구로 일관하면서 창사 이래 첫 파업의 암운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일 고용노동부와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달 11일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이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에 신청한 노동쟁의 조정신청 1차 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앞서 지난 4일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를 비롯해 4개의 삼성전자 노조가 참여한 공동교섭단은 사측과의 임금교섭 결렬을 이유로 조정신청을 접수했다. 공동교섭단은 오는 12일 임시 대의원회의를 열고 고용노동부의 조정안을 공유한 뒤 향후 쟁의 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이번 공동교섭단의 조정신청이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으로 보고 있다. 노사간 입장차가 워낙 커 합의 도출이 어려운데다 양측 중 누구라도 조정안을 거부하면 노조에 합법적 쟁의권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을 넘은 노조의 요구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전 직원 연봉 1000만원 인상, 매년 영업이익의 25% 성과급과 1인당 자사주 107만원·격려금 350만원 지급 등이다. 이 중 성과급만 봐도 지난해 삼성전자 영업이익(51조6300억원)과 정직원 수(11만명)를 감안할 때 1인당 1억1700만원에 달한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연봉의 2배 이상을 매년 성과급으로 달라는 건 과욕을 넘어 사회적 통념조차 무너뜨리는 탐욕"이라며 "삼성전자의 임금 수준과 근로환경이 이미 세계 톱 티어급이라는 점에서도 노조의 주장은 과하다"고 말했다.

‘10만전자’를 꿈꾸는 519만명의 삼성전자 소액주주 역시 뿔이 났다. 한창 미래에 대비하고 기업가치를 높여가야 할 시점에 번 돈 대부분을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노조의 요구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삼성전자 앞에는 대만 TSMC와의 시스템반도체 정상 결전과 인텔과의 반도체 시장 1위 수성전 등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경쟁사들과 달리 아직 올해 시설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을 만큼 불투명한 글로벌 경영환경에 고심이 깊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 고도화 전략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만간 의미 있는 빅딜 소식이 있을 것"이라 밝히며 기대감을 모았지만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따른 자국 우선주의 확산으로 대형 M&A 성사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최근 매그나칩반도체-와이즈로드캐피털, 글로벌웨이퍼스-실트로닉, 엔비디아-ARM 등 반도체 업계의 주요 빅딜이 각국 경쟁당국에 의해 연이어 무산된 게 그 방증이다.

특히 재계와 동학개미 커뮤니티에서는 삼성전자 노조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높다. 소수 의견을 전 직원의 의견인 양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동교섭단을 이루는 삼성전자 4개 노조의 노조원은 전 직원의 4%(약 4500명)에 불과하다.

삼성전자가 근로자와의 공식 대화 채널로 노조가 아닌 노사협의회를 활용하고 있는 이유도 노조의 대표성 결여에 있다. 노사협의회에는 직원들이 선출한 근로자 위원과 회사를 대표하는 사용자 위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협의를 통해 임금 인상률을 정하고 있다.

다만 올해는 노사협의회에서도 적잖은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근로자 위원측이 올해 사측에 제안할 임금 기본인상률을 15.72%로 결정한 탓이다. 이는 지난해 기본인상률(4.5%)의 3.5배이자 성과인상률(3.0%)를 포함한 전체 임금 인상률 7.5%의 2배를 웃도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노사협의회 첫 미팅이 고용노동부의 1차 조정 회의와 같은 11일 열린다는 점에서 이번 주가 삼성전자 노사협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은 "2020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 산업 평균임금 수준이 한국 118.5%, 일본 107.0%, EU 91.7%로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며 "생산성을 초과한 임금인상은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고 임금 양극화 심화와 같은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연합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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