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된 가운데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옥죄기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은 대출 규제 완화를 핵심 금융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건물에 설치된 현금인출기. /연합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가계부채 현황 분석 및 시사점’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1936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다.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 역시 전년 대비 9.5%로 주요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특히 가계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DP의 3배, 민간소비의 5배 가까운 속도로 늘어나며 전반적인 거시건전성을 심각하게 저하시켜 왔다.

이 같은 가계부채 규모는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한국경제의 ‘지뢰’로 자리잡은 상태다. 이는 한국은행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008년 1분기 69.2%였던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지난해 1분기 104.7%까지 높아졌다. 가계신용은 일반 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과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진 빚을 모두 합해 이르는 말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으로 대출 규제를 들고 나오면서 은행 문턱은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처음으로 2개월 연속 감소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가계대출은 수요가 꾸준하다는 점에서 잔액이 감소하는 현상 자체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대출 규제의 강도가 셌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발표한 ‘2022년 1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2000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4000억원 줄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2000억원 감소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가계대출을 더욱 옥죄는 조치를 내놓았다.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을 소득대비대출비율(LTI)로 통합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개인사업자대출에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와 용도 이외의 유용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금융당국은 또 올해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유가증권담보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DSR 40%가 적용된다는 것은 연 소득의 40%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대출 한도를 규제하는 것이다.

올들어 지난 1월부터 기존 대출과 신규 대출 신청분을 합산해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어서는 대출자에게는 이미 DSR 40%(2금융권 50%)가 적용되고 있고, 오는 7월부터는 총 대출액 1억원이 넘는 차주로 확대된다.

이렇게 되면 대출 절벽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저신용자는 물론 서민도 벼랑 끝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집값 급등기에 소외된 무주택자들은 대출 한도가 줄어들 때마다 "사다리 치우기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표심으로 연결하려는 대선 후보들은 대출 규제 완화를 핵심 금융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에 대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 90%까지 완화하고, 청년층에 대해서는 DSR도 완화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생애 최초 주택구매자와 2030세대 청년을 대상으로 LTV를 최대 80%까지 인정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LTV 80% 완화 및 기준금리 수준의 이자와 15년 거치·30년 상환을 내걸었다. 현재 주택 구입시 최대로 적용받을 수 있는 LTV는 70%다.

한마디로 이들 후보의 공약은 청년층이나 무주택자들이 빚을 더 낼 수 있도록 해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출 규제 완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의 부실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년층은 상대적으로 빚 상환 능력이 떨어져 젊은 나이에 빚 더미에 올라설 수도 있다. 현재 2030세대의 대출 증가율은 전체 평균에 비해 상당히 높다. 또한 해당 세대의 다중채무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출 규제 완화가 집값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최근 2년 사이에 집값 급등의 주체는 2030세대의 영끌족이었다.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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