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中華) Sea Power 8백년
중화(中華) Sea Power 8백년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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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년 중국 산동성 당도만에서 남송과 금나라의 해군이 맞붙은 당도해전. 남송이 승리한 이 해전은 당시까지 전례가 없었던 최대 규모의 해전이었다.
1161년 중국 산동성 당도만에서 남송과 금나라의 해군이 맞붙은 당도해전. 남송이 승리한 이 해전은 당시까지 전례가 없었던 최대 규모의 해전이었다.
<11>남송(南宋)은 바다를 장악한 해상제국이었다

1161년에, 중국의 남송(南宋) 해군이 산동(山東) 외항에서 금나라(만주족) 해군을 격파했다. 세계사상 첫 해상제국의 발단이다. 이 승리의 의미가 적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해권의 탈취였다.

동중국해는 상하이(上海)를 경계로, 북양(北洋)과 남양(南洋)으로 나뉜다. 수심이 얕은 북양은 배 크기가 작고 밑바닥이 평평한 북양선(北洋船)이 주로 뭍을 따라 다닌다. 북양선은 수심이 깊은 남양(南洋)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육지도 바다도 잘 다룬 만주족이나 한반도 사람들(당시는 고려)도 배를 내보내더라도 북양(北洋)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깊은 바다의 왕자인 정크(junk)선을 주세력으로 하는 남양선(南洋船)은 북양(北洋)이나 얕은 항구도 넘나들 수 있는 곡예를 지닌 배였다.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하북(河北)을 금나라에 빼앗긴 남송(南宋)은 남북교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서 힘의 균형을 찾았다. 그리고 경제대국으로서 지위를 지켰다. 이 때 유통된 인기상품은 북방의 고급 비단과 인삼 이외에도 남방과 동남아시아의 상품 등이 많이 있었다.

남송은 제해권을 장악하고 해상 상업에 힘썼다. 처음에는 재정이 1천만관(1千萬貫)이었을 때도 그 10%를 관세에서 거두었다. 피크였던 6천만관 때에도 5%를 걷었다.

남송 시대의 전함 상상도
남송 시대의 전함 상상도

◇바다를 장악한 남송(南宋)

남송에게 제해권은 나라의 생명선이었다. 그래서 운영 방식도 천재적이었다. 크고 작은 상선 2만여 척을 윤번제로 차터(용선)했다. 전문적인 해상(海商)과 선원이 배를 다루었기 때문에 실전에 강했다. 해전이나 경비를 하지 않는 비번상선은 정부의 후원을 받아 해외상품 구입에도 힘을 쏟았다. 해전이나 경비 같은 국가 봉사 임무는 어쩌다 가끔밖에 없었다.

이 무렵 바다상인들이 팔아치우는 상품은 상아, 침향, 바다거북, 비단, 도자기 같은 아주 비싼 물품이 있었다. 그 밖에 해외 쪽에서 소목, 후추, 유황, 약재 등이 있었고 중국쪽에서 쌀, 보리, 콩, 철과(鐵鍋,가마솥) , 우산, 마포, 동반(銅盤 구리 대야), 동유(桐油오동기름) 등이 있었다. 진주철기, 영파 돗자리, 온주칠기 같은 특산물도 있었다.

무역은 일회적이거나 우연한 교환도 아니었다. 고정된 시장이 뒷받침했다. 당시는 중국 강남지방 여러 항구에서 1척에 5톤, 50톤의 쌀을 실은 배가 쌀이 부족한 중국 복건성을 방문했다.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에도 상품을 팔아 현지의 상품을 모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남송을 멸망시키고 원나라를 세운 몽골인은 바다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사람 다루는 데는 솜씨가 좋았다. 남송 해군의 숨통을 끊은 아랍인 포수경(蒲壽庚)은 송(宋)과 원(元)의 두 임금을 만난 천주(泉州)의 세관장(稅關長)으로서, 그의 조카가 80척이나 되는 선주라고 했다.

1279년 남송과 원나라 해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애산해전(崖山海戰) 상상도. 이 전투를 고비로 결국 남송이 멸망하였다
1279년 남송과 원나라 해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애산해전(崖山海戰) 상상도. 이 전투를 고비로 결국 남송이 멸망하였다

원나라는 남송 해군을 접수했을 뿐만 아니라 더 발전시켰다. 그것은 찬파(1281년)와 자바(1297년) 원정이다. 명나라 시기에는 정화(鄭和)라는 대원정가가 나왔지만, 그 전조라고 말할 수 있다.

명나라 초기의 위정자는 해상 세력이 평시에는 무역 같은 민간 경제활동을 하다가 전시에 국가임무인 해군으로 전환하는 즉 민관 합작 시스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명은 돌연 해상세력을 모두 정부 직영으로 전환시켰다.

연안 위소제에 편입시킨 군선 2천7백 척, 남경에는 대함과 수송선 각 4백 척이라는 식이었다. 연해의 군선은 해적을 한반도, 오키나와, 통킹만으로 몰아넣고, 그 위력으로 베트남을 1407년부터 28년 동안 명나라 속령으로 만들었다.

정화의 남해 원정

◇돌연 사라진 중화해군(中華海軍)

1402년 무렵 만들어진 명나라의 정화(鄭和) 함대는 1405-33년에 걸쳐, 일곱 차례나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해역을 원정했다. 그 주력함(寶船) 250척 가운데, 길이 137m, 폭 56m, 5백 명이 승선하는 거함도 있었다. 그래서 말라카해협과 말레이반도에, 정화를 제사지내는 묘가 지금도 신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그 직후 중화해군(中華海軍)은 무슨 일인지 자취를 감추었다. 제왕의 변덕, 환관 정화의 실각, 재정부족, 북경 천도, 서몽골 위협 등 어느 것도 잘 설명되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러나 ‘중화 Sea Power’는 무장상선집단으로서 아직도 살아있다. NGO풍의 화인(華人)네트워크는 남송 이래 줄기차게 살아 있다.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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