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道具)화 거부한 예술가들…중세 깨다
도구(道具)화 거부한 예술가들…중세 깨다
  • 박석근 문화 에디터
  • 승인 2018.0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천정화. 중세시대 미술의 성격 그대로 예수가 우주를 지배하듯 푸른 공위에 앉아있다
6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천정화. 중세시대 미술의 성격 그대로 예수가 우주를 지배하듯 푸른 공위에 앉아있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중세를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 사이에 놓인 혼란과 무지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 시대는 말하자면 문화의 암흑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500년 ~ 1000년경까지 유럽에서는 제대로 된 예술양식이 출현하지 않았다.

국교(國敎)로 공인되기 이전의 기독교는 대중을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313년 로마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던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공동으로 칙령(勅令)을 반포했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함과 아울러 강제로 빼앗은 교회 재산을 반환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칙령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있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보호되고 장려되기 시작했다. 로마 황제는 각 지역 총독들에게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박해를 그만둘 것을 지시하였다.

밀라노칙령. 로마의 기독교 공인
밀라노칙령. 로마의 기독교 공인

콘스탄티누스1세는 밀라노칙령을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세력을 키우기 위해 그리스도교를 최대한 장려하였다.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각종 특권을 주었고, 교회 설립을 지원하였다.

4세기경 교회 지도자들의 눈에 비친 교회는 이교도, 비신자, 야만인들이 들끓는 악의 소굴이었다. 이교도, 비신자, 야만인들은 하느님의 교리를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교회 지도자들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고 무신론자와 야만인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교화시키기 위한 전진기지로 교회를 건설했다.

미술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유용한 도구였다. 중세사람 대부분 문맹인 탓에 그림은 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화가는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겼다. 성화는 일종의 그림책인 셈이었다.

성 마태. 8세기 경. 성서의 삽화. 그리스·로마 미술의 잔영이 희미하게 남아 있음. 빈 미술사 박물관
성 마태. 8세기 경. 성서의 삽화.
그리스·로마 미술의 잔영이 희미하게
남아 있음. 빈 미술사 박물관

중세 기독교 문화는 현실지향적인 그리스·로마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기독교 미술은 그리스·로마 미술과 달리 감각적인 인체의 표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육체보다 정신을, 세속보다 초월성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예술품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신을 찬양하거나,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였다.

8세기경에 그려진 <영국 캔터베리 시편 삽화>의 다비드는 소박한 묘사와 강렬한 표현, 화려한 색채로 눈길을 끈다. 다비드 왕은 하프를 연주하며 앉아 있고 그 주위로 악사들이 춤을 추거나 나팔을 불고 있다. 악사들보다 다비드 왕이 훨씬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은 등장인물의 중요성에 따라 그 크기를 다르게 그렸기 때문이었다.

영국 캔터베리 시편 삽화. 8세기경. 소박한 묘사와 화려한 색채. 런던 대영박물관
영국 캔터베리 시편 삽화. 8세기경.
소박한 묘사와 화려한 색채.
런던 대영박물관

그것은 인물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를 달리한 과거 회화의 규범이 희미하게 남은 탓이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그리스 미술가들과 달리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성서의 내용과 의미를 감동적으로 전달하고자했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덧없고 순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신의 뜻이었다.

이 시대 예술가들은 장인과 같은 존재였다. 교황이나 주교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작했으며 개인의 창작품은 거의 만들지 않았다. 그런 탓에 예술작품은 기성품처럼 개성과 특징이 없었고, 지역적 개성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랭스성당의 미소 짓는 천사. 1255년
랭스성당의 미소 짓는 천사. 1255년

이러한 시기에 조각에서 이단아가 한 명 나타났다. 그는 프랑스 랭스 성당의 미소 짓는 천사를 조각한 예술가로, 단 한 명 천사의 얼굴에 웃는 표정을 조각했다.

그와 같은 작품 제작은 교황과 교회의 명령을 어긴 것으로 처벌 감이었다. 교회를 장식하고 있는 예술품, 특히 조각상은 경건하고 그 표정은 준엄해야 했다. 그러나 성당이 완공된 후 감리 때 미소 짓는 천사는 제거되거나 교체되지 않았다.

아무튼 미술평론가들은 랭스성당의 미소 짓는 천사를 중세시대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 그 이유는 천편일률적인 예술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는 천사의 얼굴을 조각한 그는 도구화되기를 거부한 예술가였다.

sgp@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