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국가정보기관, 어디로 가야하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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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창설된 지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아무말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이순(耳順)이 되었으나 여전히 정치권이나 사회공동체로부터 국민이 듣기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끊임이 없다. 원장이 젊은 여성과 공모해 야당 대선후보를 음해한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하고, 조직이 열 일을 제쳐두고 대통령의 뜻을 추종해 종전선언 성사에 올인한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조용한 날이 없다.

그럼 왜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의 문제와 조직의 문제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우선 사람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국가정보조직을 이끌어 가는 기관장의 함량 및 자격의 미달이다. 대통령은 국가정보기관장을 자기 정치 참모를 임명하는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평생 국가정보 업무에 종사해 본 적이 없는 정보 문외한을 임명하거나, 국가관이 흐리고 정체성이 불분명한 정치꾼을 앉히기도 한다. 이들은 재임중에 국가정보기관의 설립 목적과 상관없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너무 고마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그의 의중을 좇아 봉사하거나 호위무사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중앙정보부-안기부-국정원으로 이어지는 국가정보기관장들의 면면을 보면 총 35명 중 17명이 군출신이고 법조인이 7명, 정보맨이 5명, 관료 출신이 4명, 그리고 학자와 정치인이 각각 1명씩이다. 실제 군 출신의 대부분이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과반을 넘는다.

그리고 우리 국가정보기관은 태동부터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과 국민국가 건설(nation-building) 및 산업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요구받게 되면서 정치와 밀접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데 한계가 있고 흑역사가 발생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1987년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정부로 대전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국가정보기관장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아 그 잔영의 관성은 지속됐고, 과거 흑역사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여전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국가정보기관을 때려 표를 얻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데 활용하려고 한다. 어떤 유력 대선후보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국가정보기관이 자신을 음해한다고 하면서 성장해 왔다.

정보통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어 지구촌 한가족이 되는 시대에도 대통령의 국가정보기관장 직에 대한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초기 법무장관 출신을 정보기관의 장으로 앉힌 것도 잘못이지만 광우병 촛불 광란을 겪은 후 원장이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정보기관이 제역할을 못했다며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인사를 후임 원장으로 앉혔다.

그런데 그 사람은 평생을 서울시 행정업무만을 해 정보업무에는 전혀 문외한으로 정보업무에 대한 지휘 자체가 제대로 안되었다. 그러다보니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직원들의 인사를 아무런 기준도 없이 맘대로 해 자신한테 복종하게 했다. 국내정보 업무를 하던 직원을 해외로 발령을 내고 해외업무를 하던 직원을 국내 지부로 발령을 내는 식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직원이 어떻게 해외정보 업무를 할 수 있겠는가? 업무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또한 예산도 설명이 안되게 맘대로 집행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충성을 다하다가 조직도 망가뜨리고 자신도 법적으로 단죄를 받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는 정보기관의 서버를 열어 비밀 정보활동 자료를 검찰에 넘겨 정보요원들을 법정에 세웠다. 관례처럼 되어있던 원장 특활비의 청와대 제공을 문제삼아 3명의 원장 모두를 단죄했다. 정권교체 후 자신들도 걸려들 것을 우려해 원장 이하 지휘부는 업무 지시를 못받아 적게 한다. 아예 업무 지시도 하지 않고 알아서 하고 문제 생기면 책임지라는 식이라고 한다. 대북업무를 제외하고는 있으나마나 한 조직이 되어 가고 있다고 조직원들이 탄식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면 선이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악으로 치부하는 남북프리즘으로 국제정세를 재단하는 흑백논리의 원장이 국가안보를 총괄하는 안보실장으로 영전하기도 했다. 북한문제만 잘 풀리면 국가안보가 탄탄해 진다고 하니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거기다가 그는 국가관과 정체성에 의심을 사기도 한다.

뒤이은 원장도 마찬가지로 이념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정치인을 임명했다. 그는 청와대 수석, 비서실장, 장관, 4선 의원까지 지낸 골수 정치인이다. 그는 후보자로 내정되자마자 "앞으로 제 입에는 정치라는 정(政)자도 올리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발사주 의혹사건 제보자와 관계로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문 정부가 원장이 특활비를 청와대에 지원했다는 상납 혐의로 박근혜 정부 3명의 국정원장이 모두 구속되었다. 그 중 한 분의 원장이 확정되지 않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불복을 신청하면서 낸 항소이유서에서 재임 시절 국정원이 수행했던 공작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담았다. 그는 "북한 내부의 김정은 저항집단을 지원하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전자(電子) 전문가를 탈북시켰다. 북한을 떠나면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 법정 증언을 했다. 그리고 그는"원래 기밀이 유지되는 정보 예산은 개인적인 횡령이 아닌 한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강조했다.

유사 이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보기관의 수장을 구속한 사례는 없다. 3명의 원장이 정치적으로 구속된 결과 국기를 흔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죽 억울했으면 국가정보기관장이『공작기밀은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정보맨의 불문율을 깻을까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럼 어떻게 국가정보기관이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 국가정보기관장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국가정보기관장이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게 하기위해 우선 국가정보기관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정보업무에 15년 이상 종사한 자로 제한하고, 경찰이나 검찰처럼 국가정보기관장 추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후보를 2∼3배수로 추천하고 그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정보업무의 안정과 발전 및 정치화를 막기 위해 국가정보기관장의 재직기간을 3∼5년 정도의 임기제 도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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