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미국이야기] ⑧ 하버드大의 아시안 인종차별

아시안 학생과 학부모들이 하버드대의 입학차별에 항의하며 2018년 10월 보스턴 코플리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1월 하버드대 등의 인종차별에 관한 소송을 심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
아시안 학생과 학부모들이 하버드대의 입학차별에 항의하며 2018년 10월 보스턴 코플리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1월 하버드대 등의 인종차별에 관한 소송을 심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

하버드대학은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 대학으로 꼽힌다. 그런 하버드에서 한국인 등 아시안 차별은 악명 높다. 흑인 등에게 입학 우선권을 주기 위해 아시안 학생들에게 ‘인종벌칙’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하버드에 지원하려면 수능모의고사(PSAT)에서 흑인은 1,100점 이상이면 된다. 백인은 1,310점. 그러나 아시아 여학생은 1,350점, 남학생은 1,380점을 넘어야 한다. 왜 한국 학생 등은 흑인보다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지원 자격을 얻는가? 이런 불공정이 없다. 그러나 약과다.

 

성적과 과외 활동 우수해도 입학사정관 심사 "인성 최악" 평가로 탈락시켜

아시안 학생들은 국가시험 성적, 학교 성적, 과외 활동 등 객관 지표에서 흑인 등보다 훨씬 점수가 높다. 그러나 입학사정관 심사에서 아주 낮은 점수를 받는다. 긍정 태도, 호감도, 용기, 친절함, 존경도 등 명확한 기준이 없는 주관·감정 판단에서 차별을 받기 때문. 그것이 사실상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 억울한 판정 때문에 합격률이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인차별보다 더 심한 아시안 차별이다.

하버드 관계자는 법정에서 "특정 인종이 더 나은 인성을 가졌다고 믿지는 않는다"면서도 "아시안 지원자들은 최악의 인성을 가진 것으로 계속 평가되어 왔다"고 증언했다. 객관 지표가 없는 무책임한 인종폄하 발언이다. 한국인 등에 대한 모독이다. 흑인들에게 이런 발언을 했다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 관계자는 흑인들은 학업에서는 최하이나 인성은 최고라고 증언했다. 무슨 기준의 판단인가? 차별의 명분은 다양성을 늘리겠다는 것. ‘공평한 기회’를 준다며 지원자의 능력과 장점을 무시하는 것은 불공평이다.

하버드 학생 분포는 아시안 25%, 흑인과 히스패닉 각각 13%. 아시안은 미국 인구의 5.7%에 지나지 않는 것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다. 심한 차별을 뚫은 한국학생 등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증거. 하버드대는 "인종 판별에 의한 입학허가를 하지 않았다면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숫자는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흑인 등을 위해 일방 평가를 했음을 사실상 인정한 셈. 인종 차별을 시인했다.

 

아시아계 대표 '공정입학을 위한 학생들' 하버드대 등 상대로 법정 투쟁 중

피해 아시아 학생들을 대표하는 ‘공정입학을 위한 학생들’이란 단체는 하버드 등의 대학을 상대로 법정 투쟁 중이다. 아시안 차별은 예일대 등 수십 개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on Action)’에서 비롯되었다. 1961년부터 민주당이 주도한 이 정책은 소수인종들에게 일정한 특혜를 주는 것. 그러나 흑인우대정책으로 변질됐다. 흑인보다 더 소수인 아시안을 홀대하는 차별정책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이 정책은 흑인 문제를 좌파들이 악용하면서 더 악화됐다.

하버드의 입학차별이 유난히 문제인 것은 83%가 좌파인 교수들이 사회정의, 인종평등을 크게 부르짖어 왔기 때문. 미국 각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쳐 온 ‘비판인종이론’을 하버드법대 교수 4명이 만들어 좌파들 사이에 인종평등 주장의 성지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신마르크스주의 무장 좌파 교수 비판인종이론을 인종평등 주장 근거로 삼아

‘신마르크스주의자’인 그들은 "자본주의자 지배계급은 법을 이용해 백인우월주의와 제도·구조적 인종차별을 자행하고 권력을 유지한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서구 자유주의 사회를 뒤엎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혁명을 이루기 위해 인종 간 분열과 갈등, 증오를 심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탄압 자본가는 백인이요 희생자는 오로지 흑인이다. 증오심 등을 부추기기엔 흑백차별이 부자와 가난뱅이의 경제차별보다 훨씬 나은 소재다. ‘노예제 원죄의식’을 가진 백인들의 순진한 정의감과 인정주의를 악용하기엔 안성맞춤. 흑인들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부추기는데도 그만이다.

그 이론을 따라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것이 "흑인의 삶이 고통을 겪고 있다(Black Lives Matter)"는 뜻의 BLM 운동이다. 경찰폭력에 항의한다며 2021년 5월부터 시작한 BLM은 미국을 휩쓸었다. 한국 등 60여 개국에서 동조 시위가 일어났다. BLM은 인종차별 항의를 가장한 폭동이었다. 시위대는 미국 정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경찰들을 나치로 부르며 처형되어야 한다고 공격했다. 시애틀 등에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깃발과 함께 경찰, 교도소, 국경, 대통령제 폐지를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난무했다. BLM의 당장 목표는 공권력 무력화와 트럼프 정부의 전복. 궁극의 목표는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위한 미국 해체였다.

이 과정에서 아시안, 하층 백인들을 생각한 "모든 삶이 고통(All Lives Matter)"이라는 주장은 좌파언론 등으로부터 "흑인차별"이란 몰매를 맞고 사라졌다. 심약한 마이크 팬스 부통령도 이를 말했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입을 닫았다. 21년 7월 애틀랜타에서 한국 여성 등이 총기 사고로 숨지자 그제야 아시안 차별이 문제라며 좌파들이 잠시 호들갑을 떨었다. 백인에 맞서는 흑인과 아시안의 연대를 강조했으나 정치 쇼에 그쳤다. 그들의 인종평등은 흑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백인 메간 라피노는 경기 전 무릎 꿇기를 주도하는 등 BLM에 대한 열렬 지지로 ‘사회정의의 전사’라 불린다. 그녀는 소셜미디어에 "눈이 감긴 아시안들을 보라"는 글을 올린 것이 드러났다. 다른 인종을 멸시하는 백인들이 흑인을 향한 아부는 마다하지 않는다. 백인 좌파들의 위선이다. 좌파 지식인, 정치인, 언론 다들 마찬가지다.

대학의 아시안 차별은 좌파가 장악한 사회구조와 문화의 소산이다. 하버드 교수들이 외치는 정의, 평등도 위선일 따름이다. 방탄소년단은 BLM에 1백만 달러를 기부해 화제가 됐다. 시위의 본질은 알았을까? 한국 학생들이 하버드 등에서 흑인 때문에 입학차별을 당하는지 알고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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