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학생 보듬어 주기
가출 학생 보듬어 주기
  • 최성재
  • 승인 2018.02.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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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학생은 담임이 귀 기울여 들어 주기만 해도 감동한다.]

“선생님, 살려 주세요! 우리 OO이 살려 주세요! OO 아빠가 OO 방에 불을 질렀어요!”

199X년, 늦은 봄, 공항고등학교, 우리 반 학생 OO의 어머니가 꾀죄죄한 슬리퍼에 과히 깨끗하지 않은 맨발로 헐레벌떡 달려오면서 울부짖었다. 옷차림은 수수함이 지나쳐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는 빗은 둥 만 둥 핀으로 대충 고정한 모양, 무엇보다 눈동자가 수시로 흔들렸다.

문득 10년쯤 전 198X년 G고등학교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다. 한창 수업 중인데, 몽둥이로 교실 앞문을 벼락 치듯 꽝 치면서 벌컥 열어젖히고, 생면부지의 50대 아저씨, 다짜고짜,

“여기 3학년 X반 맞지? 너 혹시 우리 OO의 담임 아니냐? 죽여 버리겠어!”

학생들이 공포에 질려서 외쳤다. 일부는 뒷문을 열고 후다닥 도망갔다. 옆 반에서 드르륵 드르륵 창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OO 아버지다, 한강에 빠져 죽은 OO 아버지다! 오늘 살인 사건 나겠네!”

나는 즉시 어떤 상황인지 학부모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 알아챘다. 그의 눈동자는 흉흉했지만, 도무지 초점이 맺혀 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최대한 부드럽게 나긋나긋 말해야 한다. 진심으로 공감해 주어야 한다. 이건 우리 어머니가 미치광이를 대하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배운 지혜다. 괴성을 지르고 패악을 부리던 사람도 우리 어머니만 다가가면 이내 잠잠해졌다.

“예, 여기가 3학년 X반은 맞지만, 저는 담임이 아니고 영어 선생 아무개입니다. OO 아버님, 여간 상심이 크지 않겠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나는 눈길을 돌리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3학년 X반 담임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는지, 초점은 잘 안 맺혀져도 나랑 그 담임의 체구가 너무 차이 나서 그런지, 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못내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침착하게 대응해서 그런지,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반쯤 치켜든 몽둥이를 엉거주춤 내렸다.

흐릿하던 눈동자의 초점이 천천히 내게로 맞춰졌다. 목소리도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살살 달래고 얼랬다. 이윽고 그를 호위해서 복도로 나갔다. 몽둥이는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다가 뒤따라오는 학생에게 건네졌다. 4층에서 1층까지, 1층에서 교문까지 바래다주었다. 뒤에는 학생들이 하나둘 셋 넷 따르고 있었다. 교사도 몇 명 멀찌감치 서 있었던 것 같다.

“휴!”

“선생님, 고맙습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고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담임인들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OO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일주일이면 돌아옵니다. OO이는요, 의외로 순진해서요, 돈 떨어지고 갈 데 없으면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은구슬이 옥쟁반을 구르는 듯(?)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막 밭 매다 달려온 시골 아낙네 같던 그분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또렷이 비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일주일 후, 나는 시청각 교실의 열쇠를 빌려서 OO을 데리고 들어갔다. 바로 문을 잠갔다.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하자. 몇 대 맞을까?”

“저, 3대요....”

“에이, 너도 양심이 좀 있어라. 7일 만에 돌아왔으니까, 7대만 맞자~ 응? OO아, 종아리~~”

나는 30cm 정도 되는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58kg의 체중을 실어 제법 힘차게 한 대 탁 때렸다. 그 순간 175cm에 98kg인 거구가 푹 주저앉았다.

“선생님,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목숨만 살려 주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 공포에 질린 모습이란! 나는 즉시 빗자루를 천 리 만 리 휙 내던지고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정신없이 달랬다. 나도 모르게 울먹이면서 달랬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비로소 이해되었다. 일주일 전에 그의 어머니가 왜 그런 차림이었는지, 왜 그런 표정이었는지, 왜 그런 목소리였는지, 왜 그런 말을 외쳤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가정폭력!

OO은 거의 3년간 매달 꼬박꼬박 누구보다 많은 학원비를 받아 오락과 군것질과 벗 사귀기에 몽땅 써 버렸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은 우리 반에 한두 개밖에 없었는데, 나도 없었고, 아뿔싸 그걸로 이것저것 잘못 누르다가 전화요금이 30만 원이나 나오는 바람에 학원비 30만원은 이미 탕진한 상태라 꼼짝없이 들키고 만 것이다.

“OO아, 처음에는 30만원 엄청 컸지?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남았지?”

“예.”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돈도 모자랐지?”

“예, 헤헤.”

다음 날, 나는 OO의 아버지를 불렀다. 그는 주로 지방에서 머물며 장사하느라 집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들렀는데, 그날은 마침 집에 있었다. 키는 보통이었지만, 근육으로 똘똘 뭉친 매우 건장한 양반이었다. 나는 그에게 한 주먹거리도 안 될 것 같았다.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아서 OO을 경찰대나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학원에도 한 번 안 가고... 경기도 어디 전문대라도 갈 수 있을까요? 서울의 전문대 갈 실력만 되어도 경찰대에 보낼 건데...”

“예, 경찰대는 어렵지만, 서울의 전문대는 아주 바닥은 아니니까 지금부터 마음 다잡고 공부해도 가능합니다. OO은 여자 친구 사귀는 것도 아니고, 주로 먹는 데, 친구와 어울리는 데 썼으니까, 가까이 작은아버지가 사신다니까, 거기서 학교 다니면,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경찰대는 전교 1등도 가기 힘들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가정 폭력으로부터 보호도 할 겸 뉘우치는 마음으로 공부에 재미도 붙이려면, 작은집이 좋겠다 싶어서 그렇게 권했더니, 생각은 그랬고, 말로는 보호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그렇게 권했더니, 순순히 동의해 주었다.

그 후 OO은 결석 한 번 않고 지각도 거의 않고 보충수업도 받으면서 착실히 학교에 잘 다니더니, 취업 잘되는 서울 소재 모 전문대에 합격했다. 야간자율학습은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돈을 안 주니까 학원은 이제 가고 싶어도 못 갔지만.

졸업식 날, OO은 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더니, 졸업장 주는 내 손을 솥뚜껑만 한 손으로 지그시 한 번 누르잡았다. 꽃 한 송이를 먼저 내밀었던 것 같기도 하고. 꽃다발은 분명히 아니었고. OO은 기어들어갈 듯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돌아서는 OO의 눈에 이슬이 살짝 맺혔던 것 같다.

(2018. 2. 15.) 

◇ 필자 최성재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전 영어교사
문화·교육평론가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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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2-18 02:05:00
역시 경청의 자세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흥분한 사람들의 마음도 녹이나 봅니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주면 상대방이 감동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