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백 체포, '북로당 남반부정치위원회' 사건
성시백 체포, '북로당 남반부정치위원회' 사건
  • 유진
  • 승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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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는 성시백의 묘. 구 민주노동당 인터넷 판갈이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는 성시백의 묘. 구 민주노동당 인터넷 기관지 판갈이
<12>북로당 남반부정치위원회'는 성시백 조직, 김일성이 한국에 파견한 북로당 대표부 격

‘북로당 남반부정치위원회' 사건은 다른 말로 성시백 조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성시백의 '북로당 남반부정치위원회'를 '북로당 남조선지역 대표부'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김일성이 남조선 지역에 파견한 북로당 대표부가 바로 성시백 조직이라는 것이다.

성시백은 1946년 말 서울에 들어온 뒤 체포된 1950년 5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김일성과 북한 지도부 지시에 따라 대한민국을 파괴, 전복하려고 그야말로 엄청난 대남공작을 벌였다.

성시백의 대남공작은 한마디로 '백화점식 공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각 분야의 정보수집부터 군부 동요, 군 집단월북, 국회의원 포섭 및 국회프락치 활동, 정부요인들 간 이간 조성을 통한 국력약화, 한국과 국제사회의 갈등 조성을 통한 대한민국 고립, 남북연석회의 성사 및 남한 내에서의 통일전선 구축 등 대한민국을 약화시키고 파괴, 전복하는데 필요한 모든 공작을 감행했다.

1962년 1월 중앙정보부를 시찰 온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1962년 1월 중앙정보부를 시찰 온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중앙정보부 창설 이전에는 경찰과 군 수사기관이 간첩사건까지 담당하였다 

◇성시백, 모든 조직원 직접 관리

성시백 조직에 대해 당시 수사 당국은 ‘점조직 공작'으로 이름 지었다. 이는 성시백 조직이 피라미드형 또는 벨트형 조직이 아니라 개별적 인물들이 독립성을 갖고 상, 중, 종, 횡의 연락을 가지지 않고 오직 성시백과 직접적인 연계 하에 활동했기 때문이다.

또한 성시백 조직은 무명당(無名黨) 공작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직원을 포섭할 때부터 그의 사상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활동할 때도 당이니 대중조직이니 하는 조직적 성격을 내세우지 않고 개인적인 친분이나 취미 등을 적극 이용해 접근하고 상대방이 자신도 모르게 비밀을 제공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활발한 공작을 거침없이 전개하던 성시백이 어떻게 체포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중앙정보부가 발간한 《북한대남공작사》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서울시내 경찰과 군 수사기관에서는 1949년부터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특수 지령과 막대한 자금을 받아 정부, 국회, 군부, 경찰, 기타 중요 기관에 비밀공작원을 잠입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김삼룡, 이주하 검거 소식. 동아일보 1950.4.1
김삼룡, 이주하 검거 소식. 동아일보 1950.4.1

이 과정에 김삼룡ㆍ이주하 등 남로당 지하 지도부를 체포하는데 성공하고 동시에 성시백 조직과 연계된 일부 조직원들도 적발 체포하고, 이들로부터 성시백을 위시한 '북로당 남반부정치위원회'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탐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50년 2월부터 한층 내사를 엄밀히 하던 중 5월 5일에 이르러 성시백 조직의 연락거점이자 본거지를 확인하고 성시백의 비서격이며 부책임자인 김명용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자가에서 체포했다.

이와 함께 조직 문건을 비롯해 산하 공작원들로부터 받은 각종 보고서와 기밀서류, 북한에 무전 보고하는 암호 문건 세트, 통신연락에 사용하던 무전기 2대(송수신용 각 1대), 공작금으로 사용하다 남은 금괴 80개 등 다수의 증거품을 압수했다.

체포당시 언론에 보도된 성시백의 사진,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시백의 사진이다. 당시 변장을 위해 수염을 길렀다. 꾹 다문 입술에 사진기를 노려보는 눈매가 날카롭다. 동아일보, 1950.5.26.
체포당시 언론에 보도된 성시백의 사진,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시백의 사진이다. 당시 변장을 위해 수염을 길렀다. 꾹 다문 입술에 사진기를 노려보는 눈매가 날카롭다. 동아일보, 1950.5.26.

◇6·25 직전인 50년 5월15일 새벽 2시 전격 체포

이 같은 수사보고를 받은 서울지방검찰청은 5월 12일 검ㆍ군ㆍ경 대공수뇌부 비밀연락회의를 열고 수사전담반을 편성하여 일제히 본격적인 수사 및 검거작전에 착수했다.

먼저 서울시내 우수 수사관들을 동원해 부책임자인 동시에 연락책인 김명용의 부인을 체포하고 그로부터 성시백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5월 15일 새벽 2시에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서 성시백을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성시백이 5.30선거에 사용하려고 갖고 있던 공작금 14,800불(당시 약 4,000만원)과 기타 금품 등도 압수하였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5월 17일 성시백 조직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일제 검거작전에 착수하여 문건책 길진섭을 비롯하여 조직관계자 총 112명(성시백 포함)을 1차적으로 검거하고 이들이 사용하던 20여개의 아지트도 확보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박헌영ㆍ이승엽 등이 남로당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가 투항변절한 홍민표ㆍ안영달 등을 시켜 성시백을 수사기관에 밀고해 체포하도록 했다며 남로당에 성시백 조직 사건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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